전화 한 통
전화 한 통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3.2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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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이따금 걸려오는 아들 전화 한 통에 시름을 잊는다. 

어쩌다 며느리로부터 ‘아버님’ 하는 전화 한 통을 받는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잊고 살던 친구로부터 어느 날 문득 전화 한 통 걸려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렇게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한 통은 연대감을 깊게 하고, 삶을 푸근하게 한다.

이처럼 전화 한 통은 관계십의 윤활유이다. 

전화 한 통에 울고 웃는 세상, 기쁜 소식은 기쁜 대로, 슬픈 소식은 슬픈 대로 주고받는 전화 한 통은 모두 아름답다.

요즘 전화 한 통에 인색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음에 벽을 쌓고, 외딴섬처럼 살고 사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의 미덕조차 사라져 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일상에서 우리 사회의 우울을 본다.

전화는 소통의 수단이고, 유·무선 전화기는 공간을 초월하는 소통의 도구다.

전화기를 발명해 상품화한 이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스코틀랜드, 1847~1922)이다. 

1876년 3월 10일 벨이 건물 내 전화선을 통해 기계 수리공이자 모형 제작자였던 조수 왓슨과 통화한 최초의 말은 ‘왓슨, 이리 와주게. 자네가 필요하네.(Mr. Watson, Come here! I want you)’이었다. 이 강렬한 첫 마디는 로맨틱한 말로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전화기가 처음 들어온 것은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지 20년 후인 1896년이었고, 실제 통화는 1898년 궁중에서 이뤄졌다. 

대한제국 궁내에 설치돼 사용되었던 9대의 전화는 당시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문명은 날로 진보하고 발전해, 전화기와 통신수단도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황금알을 낳는다는 이동통신이 대세를 이룬지 오래고, 전화기도 유선전화기에서 무선전화기인 시티폰, 핸드폰, 스마트폰에 영상전화와 블루투스까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통화가 가능한 보이스톡 같은 무료전화도 출시되어 성업 중이다. 

다시 말해 전화의 접근성과 편리성은 물론 통화의 질까지 좋아져 그야말로 통신 만능시대가 된 것이다. 더욱이 위성통신기술의 발달로 북극에서도 남극에서도,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도, 태평양 한가운데서도, 유럽에서도 남미에서도, 어디서든 밤낮없이 통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편리한 세상이건만 아이러니하게도 전화 한 통에 인색해져 가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으니 안타깝다. 

스마트폰에 파묻혀 살지만 정작 통화는 별무인 것이다. 

수업 중에 대학생들에게 부모님에게 안부전화 거는 횟수를 물었더니 일주일에 한 번쯤 한다가 절반가량 되었고, 나머지는 전화할 일이 생길 때 한다고 했다. 

부모의 필요와 눈높이로 전화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눈높이로 전화하는 것이다. 

배려가 있는 전화 한 통이 행복바이러스가 된다. 

전화 한 통의 미학은 바로 배려로부터 출발하고, 배려로부터 완성된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데, 딱히 전화를 걸만한 사람이 없는 이는 불행한 사람이다.

저장된 전화번호는 많은데, 전화를 걸면 반갑게 받아줄지 몰라 망설이는 이들도 딱한 사람이다.

언제든 전화하면 반갑게 받아주는 이가 있는 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비 오면 비 온다고, 눈 오면 눈 온다고, 바람 불면 바람 분다고 전화 오는 이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벨은 울려야 한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는 기기일 뿐 전화기가 아니다. 

그대여!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라는 어느 시인처럼 그대도 지금 누구엔가 사랑의 전화, 응원의 전화, 관심의 전화를 거시라. 

그대의 넉넉한 전화 한 통에 행복해할 사람들이 저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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