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건설 ‘천안의 추억’
포스코건설 ‘천안의 추억’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5.03.2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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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 <천안·아산>

검찰은 포스코건설의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와 관련, 긴급체포한 전 베트남사업단장에 대해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포스코건설 본사(13일), 베트남사업 관련사들 압수수색(17일)에 이어 비리 혐의자에 대한 검찰 본격수사가 시작됐다. 

포스코건설은 2009~2012년 베트남에서 사업을 진행하면서 현지 하도급 업체에 지급하는 대금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포스코 전 회장·부회장 등 당시 수뇌부에 대한 수사도 임박했다.

포스코건설은 4년전 천안에서 쓴 비자금(뇌물) 때문에 곤욕을 치르면서 또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었던 셈이다. 2011년 5월 사무관급 천안시 공무원 2명과 과장급 천안경찰 1명이 잇따라 구속됐고 결국 2명이 징역형을 받았다. 

수사를 맡은 검찰 관계자는 “천안의 급격한 도시 성장세와 달리, 공무원과 경찰간의 후진적 토착비리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업무 관련 수뢰를 일삼던 공무원 A씨가 뇌물액수 정점을 찍게 한 게 바로 포스코건설이었다. 2007년 4월 그는 ‘2억원 등산배낭’을 받았다. 오만원권이 나오기 전으로 1만원권 백만원 뭉치가 200개 들어 있었다. 배낭 무게가 20kg이 넘었다. 

A씨는 그 돈에서 3000만원을 떼 곧바로 오래 알고 지내던 경찰 B씨에게 넘겼다. 부인이 “왜 이렇게 많이 주냐”고 했다. “다음을 위해서 이 정도 ‘인사’는 해야 한다”고 답하고 경찰서로 찾아가 그의 차 트렁크에 ‘3000만원 쇼핑백’을 넣었다.

포스코건설은 A씨에게 왜 이렇게 많은 돈을 건넸을까. 천안시 수도사업소 하수과장인 A씨가 1200억원짜리 대규모 하수관거 공사 수주를 도와줬고, 향후 공사 과정에서 편의를 봐달라는 뜻이었다. 포스코측은 이 돈을 건네면서 A씨에게 “주위에도 인사하라”고 주문했다. 경찰 B씨에게 넘어간 돈은 그런 차원이었다.

하수관거 비리는 수뢰 9개월전부터 준비됐다. 돈 냄새를 맡은 A씨(당시 환경사업소장)는 2006년 7월 하수관거 주관부서인 수도사업소로 옮겨가기 위한 공작에 들어갔다. 경위 신분으로 천안시장과 골프를 즐기는 등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경찰 B씨에게 속내를 털어놨다. 시장 비서실장 C씨에게도 인사 청탁하기로 했다. 그에게 줄 ‘2000만원 주스박스’는 평소 밀착관계인 환경사업자 D씨가 준비했다.

네명이 일식집에서 만났다. A씨에 따르면 ‘청탁 대리인’ D씨는 모임알선자인 경찰 B씨에게도 2000만원을 건넸다(항소심 증거불충분 판결). 

며칠 후 시장이 전화를 했다. “열심히 해보겠냐”고 A씨에게 묻더니 하수과장 발령을 냈다. 이듬해 1월 포스코건설 주간사 컨소시엄은 강력한 경쟁사 D건설을 누르고 공사를 따냈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위력은 파괴적이다. ‘새발의 피’ 정도 액수인 천안의 2억원 등산배낭도 여럿 울렸다. A씨는 상사·부하 직원 5명에게도 ‘인사’하려 했다. 성사됐다면 천안시는 줄초상 날 뻔했다. A씨가 건넨 검은돈을 거부한 공무원 중 A씨의 부정 낌새를 사정당국에 알린 이는 없었다. 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아무튼 수뢰 공무원들은 벌을 받았다. 항소심 판결은 다음과 같다. 공무원 A씨 수뢰액 4억8000만원, 징역 5년. 경찰 B씨 수뢰액 3300만원, 징역 3년 6월. 공무원 C씨 벌금형(1심). 업자 D씨 집행유예 3년. 4년전 까발려진 일이라 이미 형(刑)을 마친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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