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깊어 드러나는 것
가뭄이 깊어 드러나는 것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5.03.2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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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승범 <시인>

올봄 유난히 가뭄이 깊습니다. 자주 다니는 월악산 나루터에도 물이 한참 빠졌습니다. 물이 빠지자 오래전에 수몰된 마을이 드러났습니다. 흙으로 세운 집은 주춧돌만 남았고 시멘트로 지은 집은 반이 넘게 허물어져 있습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마을과 도로를 잇던 다리였습니다. 오래 무너지지 말라고 튼튼하게 지어 옛 모습 그대로 남았습니다. 마실과 마실을 이어주고 세상을 넘나들었던 다리였습니다. 낡아 버려진 그것을 보고 있는 사이에 아주 오래된, 그리고 아름다운 다리를 떠올렸습니다.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하기 위해 까마귀와 까치가 만들어 준다는 다리 오작교(烏鵲橋).

서로의 사랑에 빠져 밭 갈기도 멈추고 옷감 짜기도 그치고 지독한 열애를 했던 견우와 직녀를 1년에 한번만 만나게 해 준 상제(上帝)의 처사는 일면 가혹해 보이지만 곰곰 따지고 보면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을 변함없이 아름답게 하는 데 꼭 필요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은 그 한결같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아 변색되고 퇴색하기 마련입니다. 견우의 열정은 식었을테고 직녀의 꿈은 삭아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1년에 한번만 허락한 사랑 때문에 견우와 직녀는 1년 364일을 꿈에 젖어서 희망을 품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기를 열렬히 고대했겠지요. 그렇게 고대한 사람을 만나게 해 준 다리는 반가움의 눈물에 젖고 곧바로 이별의 눈물에 젖어 까마귀와 까치의 온몸은 흠뻑 젖었겠지요. 그렇게 짧고 아쉬운 만남 뒤에 그들은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이 식을래야 식을 틈이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그렇게 변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호수에 드러난 낡은 다리를 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생각합니다. 어느 학자가 분석하기를 그랬답니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는데 그 기간은 1년 반에서 2년 사이랍니다. 그 이후에는 손을 잡아도 전기가 통하지 않고 눈길이 마주쳐도 가슴이 뛰지 않는 무덤덤함으로 돌아간답니다. 그러나 1년에 한번 고대하고 고대하던 마음으로 만나는 견우와 직녀는 만날때마다 가슴의 피가 뛰고 온몸이 불덩이로 타오르겠지요. 우리네 사랑 또한 그랬으면 싶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 가다듬고 기다리면 항상 새로운 사랑의 마음으로 살 수 있겠지요. 항상 그래지기를 바랍니다. 

비가 내리고 물이 불어나면 낡은 다리는 다시 감춰지겠지요. 감춰진다고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때 다시 가물면 제 모습을 드러내어 마실과 마실을 잇던 자취를 드러내겠지요.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는 까치와 까마귀의 노고(苦)를 잊지 않겠지요. 

우리네 사랑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순간 바람처럼 지나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꼭꼭 참고 견디고 기다리고 아쉬워도 오랜 세월 변하지 않는 그런 견고함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변할 수 있음을 알지만 기다림으로 메꿔나갈 그런 그리움의 다리 하나 있었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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