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불청객
봄의 불청객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3.2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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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세상의 모든 일은 단면적이지 않다. 여러 가지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다면체인 것이다. 봄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봄은 긍정적 이미지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새로운 출발이라는 면, 화사한 면과 같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이 피곤하다는 부정적인 면도 봄의 여러 가지 면들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봄에 나른함을 느끼는 과학적인 이유는 차치하고. 사람들은 춘곤(春困)을 봄이면 으레 그러려니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사실이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도 춘곤(春困)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봄 잠(春眠)

枕低被暖身安穩(침저피난신안온) : 베개 낮고 이불 따뜻하니 몸이 편안해
日照房門帳未開(일조방문장미개) : 해가 방문 비추건만 휘장은 아직 걷지 않았네
還有少年春氣味(환유소년춘기미) : 아직도 젊은 날의 봄기운이 남았는지
時時暫到睡中來(시시잠도수중래) : 수시로 잠깐씩 꿈속으로 오곤 하네

춥고 삭막한 겨울이 가고 마침내 봄이 왔다. 새싹은 돋아나고 꽃은 피어나고 세상은 아연 생기가 넘치지만 시인의 몸은 정반대로 나른하기 짝이 없다. 예의 춘곤이 찾아온 것이리라. 

낮 동안 나른한 졸음을 참던 시인은 저녁이 되자 비로소 이부자리를 하고 누웠다. 베개가 목 아래를 받쳐주고 이불은 따뜻하다. 춘곤증(春困症)으로 몸이 나른하고 졸리던 참이었으니 이보다 더 반가운 것이 또 있을까? 베개를 베고 따뜻한 이불을 덮자마자 몸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져 절로 잠이 들고 말았다. 해가 방문을 환하게 비추는데도 아직도 지난밤 쳐놓았던 휘장이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시인은 여전히 곤한 잠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소와 달리 늦잠을 자고 있는 것인데, 이는 바로 춘곤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봄의 불청객인 이 춘곤이 싫지만은 않은 듯하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 자주 느꼈던 그러나 나이 들면서는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봄기운을 다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젊은 날의 봄기운은 시인이 잠들어 있을 때 꿈속으로만 다시 찾아오곤 했다. 그래서 이를 느끼기 위해서는 잠들 수밖에 없었는데, 춘곤이야말로 봄 잠의 촉매제였으니 말이다. 봄의 불청객을 반가운 손님으로 둔갑시킨 시인의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봄은 따사롭고 화창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른하고 피곤하다. 바로 춘곤현상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를 달갑지 않은 봄의 불청객 정도로 치부하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비록 초청하지 않은 뜻밖의 손님이 뜻하지 않은 선물을 가져올지 누가 알겠는가? 젊은 날 느꼈던 봄기운을 늘그막에 선물로 받는다면, 이 선물을 가져온 주인공이 춘곤이라면, 그래도 이를 미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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