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받아야 할 사람들
인성교육 받아야 할 사람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5.03.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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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오는 7월부터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한다. 학교는 총 예산의 일정 비율을 인성교육에 써야한다. 학교장은 학기초 인성교육 계획을 교육감에게 보고한 뒤 연말에 평가받는다. 교사들의 인성교육 연수도 의무화되고, 교원 양성기관에서는 인성교육이 필수과목으로 개설된다. 지난해 12월 국회가 전원일치로 통과시킨 인성교육진흥법의 골자다. 

이 법은 정부와 정치권이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럴 해저드를 진단한 결과 내놓은 처방이라고 한다. 우선 세월호 대책에 대한 고심이 왜 학생 인성교육을 강화하자는 황당한 종착지에 도달했는지 궁금하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들에게서 어떤 인성의 결핍이라도 발견됐다는 얘기인가. 

당시 학생들은 어른 말 잘듣고 따르라는 교단과 사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다. 아이들이 당시 남긴 문자나 동영상에서도 인성의 문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죽음이 예감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대부분 아이들은 친구를 격려하고 스승을 걱정하고 부모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물이 차오르는 선실로 내려갔다가 희생된 아이들은 있었지만 혼자 살려고 친구들을 외면한 아이들은 없었다. 한 아이는 친구의 휴대폰을 빌려 “엄마 미안해, 아빠 미안해”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부모보다 먼저 가는 것이 불효임을 학교에서 가르쳤을 리 없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자신의 죽음으로 슬퍼할 부모를 떠올리고 가슴아파하는 그런 효심은 교실에서 교과서놓고 가르친다고 길러질 덕목이 아니다. 어른들을 수치에 떨게하고 집단 가해의식에 빠지게 한 것은 학생들의 이 의연함 이었다. 

아이들의 인성은 교육보다 함께하는 어른들의 인성에 영향받기 마련이다. 교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암울한데 학생들이 교실 안에서 밝고 고운 인성을 키워낼 수는 없다. 최근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사회상만 해도 그렇다. 굴지의 대기업들이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줄줄이 검찰의 조사를 받고있다. 한 대기업 오너는 정부가 보조한 돈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있다. 군대 비리는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꼬리를 문다. 그제 전직 해군 참모총장이 통영함 납품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됐다. 고위 공무원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되는 의혹의 수위는 날로 높아져 엄연한 현행법 위반인 위장전입은 흠집 축에도 끼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다운계약, 논문표절, 병역미필 따위도 워낙 단골메뉴가 되다보니 이젠 논란거리도 되지않는다. 이런 나라에서 도덕적 소양을 키워야한다는 훈육이 아이들에게 먹힐 까닭이 없다. 

인성은 사색하고, 성찰하고, 주변과 교류하고 공감하며, 터득하는 가운데서 생겨난다. 사람다운 사람 기르기를 포기하고 공부나 문제풀이에 능한 기계형 인간 양산에 골몰하는 공장형 학교에서 배양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성교육은 아이들을 입시지옥과 무한경쟁에서 해방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행복지수 세계 최하위의 아이들에게 운동장과 도서관과 미술관과 음악실을 선사할 때 비로소 인성은 그들 내부에서 기지개를 켤 것이다. 

그 다음에 바른 인성이 존중받고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정도를 걸으려는 사람은 벽창호나 부적응자로 매도되고 편법과 책략에 능한 수완가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인성의 황폐화는 피할수 없다. 그런 사회를 만들고 유지·고수해가는 사람들이 법을 만들어 감히 예비국민들의 인성을 교육하겠다고 나섰다는 비판이 억지로만 들리지 않는다. 법안을 만든 사람들부터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이 남긴 자취들을 교본삼아 인성교육을 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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