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그치지 않다
죽어도 그치지 않다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3.1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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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인생의 성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것처럼 답이 다양한 물음도 없을 것이지만 가장 소박하기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혹은 타고난 천성(天性)대로 사는 것일 것이다. 돈 벌이가 천성이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요, 명예욕이 천성이면, 높은 지위에 올라 이름을 날리는 것이 성공일 것이다. 그러나 보통 이러한 세속적인 성공은 결말이 허무하기 쉽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면 물질과 외양만으로 충족시킬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공허함과 내면의 빈곤은 결코 돈과 명예로 치유될 수 없는 불치병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가 천성인 사람은 빈궁한 삶에도 글을 쓰는 것에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가 딱 그러했다.
 
◈ 강 위에서(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
爲人性僻耽佳句(위인성벽탐가구) : 사람됨이 편벽하여 좋은 글귀에 탐닉하니
語不驚人死不休(어부경인사부휴) : 말이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치지 않으리
老去詩篇渾漫與(노거시편혼만여) : 늙어 세월 가면서 시편엔 온통 흐트러진 생각 주어지고
春來花鳥莫深愁(춘내화조막심수) : 봄은 오지만 꽃과 새에도 근심이 깊어지지 않네
新添水檻供垂釣(신첨수함공수조) : 새로 물 난간 보태지니 낚시 드리울 채비 갖추어졌고
故著浮槎替入舟(고저부사체입주) : 예부터 뗏목에 붙어서 배 타는 것을 대신했네
焉得思如陶謝手(언득사여도사수) : 어떻게 하면 도연명과 사령운 솜씨와 같아져
令渠述作與同遊(령거술작여동유) : 글들로 하여금 그분들의 것과 더불어 노닐게 할 수 있을까?



시인은 본인의 타고난 성품이 외골수라고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무슨 일에 한번 빠지면 거기에 몰두해 다른 일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런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외골수 시인이 빠진 것은 다름 아닌 훌륭한 글귀였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단숨에 시를 완성했던 이백(李白)과는 달리 시인 두보(杜甫)는 퇴고(推敲)에 퇴고(推敲)를 거듭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詩作)을 마치곤 했는데, 이는 가구(佳句)에 탐닉하는 성벽(性癖) 때문이었다.
그러면 시인이 더 이상 퇴고(推敲)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독자(讀者)의 반응이었다. 시인의 시를 읽은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아야만 비로소 퇴고(推敲)를 마치고 시를 완성했던 것이다.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멈추지 않을 정도로 그 작업은 치열하고도 집요하였다. 이처럼 철두철미한 시작 태도를 지닌 시인도 나이를 피해갈 수는 없었는지, 늘그막에는 시작(詩作)의 집중력이 흐트러져, 새봄의 꽃과 새를 보고도 깊은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래서 강에 나가 새로 지은 난간에 기대어 낚시를 드리우기도 하고, 예부터 타던 뗏목을 배 대신 타기도 하면서 기분전환을 시도해보지만, 그래도 여전히 옛날 육조(六朝) 시대의 대시인이었던 도연명(陶淵明)과 사령운(謝靈運)의 경지에 이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이 들어서도 오로지 훌륭한 시작(詩作)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벽(性癖)이 있다. 억지로 그것을 거스르기보다는, 순리대로 그것을 따라 사는 삶이 훨씬 더 만족스러울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사는 인생이 세속적으로 크게 성공한 인생보다 울림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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