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5.03.1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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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주변에 친구가 늘 많은 사람은 대부분 입담이 좋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 입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는 구성지고 찰지다. 똑같은 유머집에서 나온 이야기라도 귀로 들려지는 맛이 다르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군가의 이야기는 썰렁해지고 누군가의 이야기는 웃음이 난다. 일상에 웃을 일이 많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개그프로그램은 필수 시청프로그램이며 유머러스함을 성공의 덕목으로 여기고 있다.

나도 타고난 이야기꾼을 좋아한다.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은 눈으로 읽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편이라 글쟁이 이야기꾼을 정말 좋아한다. 생각지 못한 반전과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 혹은 주위에서 일어날 것 같지만 누구도 글로 쓰지 않았던 이야기를 보여주는 소설가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천명관이라는 소설가도 그 중 한명이다. 새로운 소설이 출간될 때마다 어떤 이야기 속으로 날 데려갈지 기분 좋은 떨림에 흥분된다. 

추위에 움츠러들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늘어짐이 많아져 책을 한동안 읽지 못했다. 새 책을 받을 때의 설렘이 좋아 읽지도 않으면서 사들였던 책들이 책장에 쌓여만 갔고 볼 때마다 사랑을 주지 못한 까닭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 다잡고 먼지도 쓸어내리고 처음으로 잡아든 책이 천명관의 도서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천명관 저·창비 2014)이다. 제목부터 슬며시 미소가 어린다. 어떤 내용일지 모르겠으나 꽤나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책장을 연 순간부터 어둠과 애잔함이 마지막 장까지 이어진다. 고단한 삶이 연속으로 나타난다. 

고귀하게 태어나서 객사하는 이야기부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면제와 소화제를 밥 먹듯이 복용하는 출판편집자 이야기, 돼지 부속구이와 소주 한병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낙으로 사는 육체노동자 이야기. 소설 속 이야기지만 일상의 힘겨움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래도 책은 손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것이 타고난 이야기꾼인 저자의 힘일 것이다.

책을 읽는 이유는 누구는 단순 정보를 찾기 위해서이고 누구는 희망을 보기 위해서 읽는다. 또 어떤 사람은 위로를 받고 싶음에 읽기도 한다. 이 책은 어렵기만 한 인생살이가 뭐 별거 있겠느냐고 그냥 살아가면 된다고 이야기해준다. 삶이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게 푸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깐 말이다. 그래서 위안이 된다.

따듯한 바람에 마음이 설레는 계절이다. 봄맞이 나갈 때 한 손에 책 한권이 들려 있음 좋겠다. 어떤 책이든 상관없다. 나른한 봄바람이 책을 더욱 재미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이 책으로 봄을 열었으니 계속 다른 책들과 함께 봄을 지내야겠다. 

눈부신 햇살 아래 흩날리는 꽃잎과 책 한권이 함께하는 멋진 봄날이 우리 앞에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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