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
토끼와 거북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5.03.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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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반영호 <시인>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꼬지꼬지 캐물어 기어이 알아내야 했고 풀리지 않으면 몇 날 며칠을 파고 또 파내어 의문이 가실 때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새롭고 신기한 것들에 대하여는 더욱 집착했다. 의구심 내지는 탐구심이랄까? 진드기같이 달라붙어 치근덕거리며 매달릴 때면 답변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아버지셨다. 

서울은 누구에게나 호기심 천국, 신드롬의 도시. 서울은 우선 말이 달랐고 거기 사람들은 수돗물을 먹고살아 얼굴이 우윳빛에다 똑똑할 뿐 아니라 예쁜 깍쟁이들만 산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온 사람이나 다녀온 사람이 있으면 둘러앉아 서울 얘기를 들었는데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았다. 서울 사람들은 우리 촌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받은 특정인으로 여겼다. 

누구나 부푼 꿈을 가지고 있는 선망의 도시에 어떻게 우리 가족 중엔 한 사람도 서울 사는 사람이 없었는지, 아니 친척 중에도 없었는지. 누군가 거주자가 있어야 구실 삼든 핑계삼아 서울이란 곳을 가볼 수 있으련만 내겐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서울 300리. 120㎞다. 마라톤 풀코스거리가 42.195㎞이니까 서울은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마라톤 선수가 풀코스를 세 번 뛴 거리에 있는 먼 곳이다. 십 대에 서울을 세 번 가보았다. 걸어서 갔고, 뛰어서 갔고, 자전거로 갔다. 모두 젊은 패기때 일이지만 강렬한 호기심과 인내력 한계의 시험에서 비롯되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지 어려울 때마다 그때 고생한 일을 생각하면 위로가 되고 힘이 솟는다. 

첫 번째 도전은 도보였다. 어둑어둑한 새벽 4시에 출발했다. 도보라지만 경보에 가까운 빠른 걸음으로 출발했다. 지금이야 아스팔트길이지만 그땐 울퉁불퉁 자갈이 깔린 신작로 길이다. 온몸에 땀이 비 오는 듯했다. 지칠 대로 지쳐 도로가 가로수 밑에서 쉴 때면 금방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서울에 도착해보니 밤 12시였다. 

두 번째 뛰어서 갈 때는 처음 걸어서 갈 때에 비하면 약과였다. 숨이 턱턱 막히고 곧 쓰러질듯한 괴로움이다. 마라톤 선수들의 끈기 있는 인내력과 지구력을 이해하겠다. 뛰다 걷다가를 반복했는데 뛰는 시간보다 오히려 걷는 시간이 많았는데 도착해보니 밤 12시였다. 

세 번째 자전거로 갈땐 자신만만했다. 두 번의 경험이 있었거니와 기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그 어느때보다도 용이하고 힘도 훨씬 덜 들 것 같았다. 출발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씽씽 달렸다. 그런데 중간지점인 이천쯤 갔을때 문제가 발생했다. 엉덩이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짓물러 안장에 앉을 수 없도록 쓰리고 아파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야만 했다. 자전거가 오히려 짐이 되고 만 것이다. 역시 서울 도착은 밤 12시였다.

결국, 걸어서 가든 뛰어서 가든 자전거를 타고 가든 도착 시각은 거의 같았다. 이솝의 토끼와 거북이 생각난다. 경주에서 느린보 거북이가 날쌘돌이 토끼를 이긴 이야기다. 자만했다가 낭패를 본 토끼나 걷는 것보다 뛰거나 자전거로 쌩쌩 달려가면 빠를 것이라는 오판의 경험담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도 다르지 않으리라. 서두른다고 빠르지 않다. 돈이 많거나 적거나 권력이 높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인생의 종착역에 도달하는 것은 거의 엇비슷하지 않은가. 과정이 중요할 뿐.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포옹하고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음을 기억하자. 산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돌멩이나 작대기에 걸려 일을 당한다. 서두르지 말고 조바심을 갖지도 말고 주워진 삶에 충실하면서 바른길로 여유롭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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