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대죄의 단식
석고대죄의 단식
  • 충청타임즈 기자반영억 신부 <청주 상당노인복지관장>
  • 승인 2015.03.12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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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반영억 신부 <청주 상당노인복지관장>

얼마 전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사건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떤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폭력은 있어서도 안 되고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자유를 옥죄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김기종씨의 주거지와 사무실에서 압수한 북한 관련 서적 등 문건 30여건을 외부 전문기관에 감정을 의뢰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니 그 결과가 주목됩니다. 이와 관련 모 정당 총재가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며 석고대죄를 제안, ‘석고대죄 단식 논란’이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쾌유를 기원하는 난타-발레-부채춤까지 등장하였습니다. 모 정당 총재가 단식하는 이유는 테러 사건으로 안전 청정국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고, 마크 리퍼트 대사를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고, 미국 국민들과 미국 정부에게도 ‘대단히 죄송하다(So Sorry)’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랍니다. 꿀물을 마시고, 효소를 먹으면서 앞으로도 단식을 이어간다니 대단한 희생입니다.

‘세월호’희생자들을 지켜주지 못해서 가슴이 아프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어디 있으며 그 모든 것을 위해서 단식을 하는 이는 어디 있느냐? 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슬람교에서 단식은 신의 초월성을 인정하는 최고의 수단이랍니다. 성경에서도 기도와 자선 행위를 병행하는 단식은 절대자 앞에서 인간의 비천함과 소망과 사랑을 드러내는 중요한 행위의 하나입니다.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단식할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남이 모르게 할 때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의 삶이건 신앙의 삶이건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 합니다. 좋은 평판을 받기를 기대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면의 힘을 길러 그런 것에 민감해 하지마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내적인 힘이 있으면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단식은 자신에 대한 절제와 극기의 상징입니다. 그냥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단식을 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겪으신 배고픔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 순간부터 배고픈 이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온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돕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내가 허기져봐야 굶주린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낮추고 치우치지 않는 더 큰 사랑으로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외적인 단식을 통해 마음의 쇄신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을 지켜 드리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단식하면서 한 사람을 미워하고 단죄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그 단식은 공허한 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하는 단식은 오만과 자기 과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절대자의 눈에 드는 단식은 이웃사랑과 연결되어야 하고 진정한 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편 가르기 하지 않고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울 수 있는 단식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 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5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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