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 캠퍼스에서
새봄, 캠퍼스에서
  • 김기원 <시인·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3.1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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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청주대 겸임교수>

이 땅에 새봄이 왔다.

생태계에서 봄은 남에서 북으로 올라오지만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봄은 미래 세대들이 뛰어노는 학교 교정에서 잉태되고 나래를 편다.

봄은 초등학교에서 운동장으로부터 시작, 중·고등학교 교정을 거쳐 대학교 캠퍼스에 당도해 멋진 새봄으로 완성된다.

학교마다 졸업생들이 떠난 빈자리에 신입생들이 들어와 입학식을 하고, 재학생들은 새 학년으로 승차해 후배들을 맞이한다. 봄은 그렇게 새내기와 새 학년들로 인해 새봄으로 환생하고, 희망찬 새봄으로 거듭난다. 

봄의 사전적 의미는 한해의 네철 가운데 첫째철로 겨울과 여름 사이이며 달로는 3~5월을 말한다. 또한 봄은 인생의 한창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며, 희망찬 앞날이나 행운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봄은 참으로 좋은 계절이며 듣기 좋은 말이다.

우암산자락에 자리한 청주대학 캠퍼스에도 봄기운이 완연했다. 교정에 있는 나무마다 새순이 움트고 있고, 철 이른 개나리는 벌써 꽃망울을 내미는 등 새싹과 나목들이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봄맞이를 하고 있다.

봄은 땅에서 서식하는 모든 식물에게 새순을 돋게 하지만, 곧 쓰러질 것 같은 고목에도 새순을 허락한다. 그런 고목들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어디에서 피든, 어떤 종류의 꽃이든 이 세상 모든 꽃은 귀하고 아름답다.

인생도 이와 같다. 꿈과 희망이 어린이와 청소년과 장년들만의 특권이 아니어서, 고목 같은 노년에게도 꿈과 희망은 있다. 세상 꽃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처럼, 인간들이 길어 올리는 꿈과 희망도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두 귀하고 아름답다.

물론 그 꿈과 희망이 결실을 이루면, 그리하여 자신은 물론 인류와 공동체에 유익하게 쓰임 받으면 더 없는 기쁨이고 축복이겠지만 꿈과 희망을 이루지 못했다하더라도 고난을 극기하며 목표에 도전하는 과정 또한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봄은 그렇게 희망을 먹는 계절이다. 요즘 대학 분위기가 7~80년대와 사뭇 달라 마음이 아리다. 패기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어야 대학생들이 청년실업 탓인지, 고액의 등록금 때문인지, 졸업 후 불확실한 진로 때문인지 꽃다운 청춘들의 얼굴들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학문을 하는 탓에 마치 고3 수업시간 같은 분위기를 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불렀던 단가 ‘사철가'가 뇌리를 스친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그렇다. 봄은 분명 찾아왔으나 희망이라는 기댈 언덕이 마뜩찮은 것이다. 예전보다 더 많은 스펙을 갖추었건만 오라는 곳도 딱히 없고, 갈만한 곳도 별로 없다. 그러니 패기와 낭만과 도전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뜨겁게 분출되어야 할 캠퍼스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2015년도 서울대학교 입학식에서 총장의 권유로 평교사 신분인 김난도 교수가 축사를 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꿈에 부풀어 한껏 고무되어 있는 신입생들에게 “당신이 여기 앉아있기 위해 탈락시킨 누군가를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승리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채무자입니다”라고 역설해 신입생은 물론 참석자 모두를 숙연케 했다. 

이 세상에 부모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지역사회와 공동체로부터 도움 받지 않고 산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저 잘난 맛에 살지만, 대부분 이자는커녕 원금도 갚지 못한 채 한생을 살다 간다. 그러므로 김난도 교수의 대갈일성은 비단 서울대 신입생들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였다. 

청양의 해 새봄이 이른다. 때 맞춰 털을 주고 끝내 제 살점까지 내어주는 양처럼 베풀며 살라 한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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