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비수
초승·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비수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5.03.1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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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승범 <시인>

예전에 유명한 문인이 쓴 초승달은 싱겁고 그믐달이 더 애달프다는 내용의 수필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후로 그믐달은 유명해졌고 초승달은 초라해졌습니다. 그 초라한 초승달을 위로하고자 합니다. 

달은 차면 기울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진부한 진리의 문구가 있습니다. 가득 찬 달은 보름이 되면 가득 채워지자마자 바로 그믐으로 향합니다. 그믐으로 간 달이 죽음이라면 초승은 다시금 환생하는 생명의 모습일 것입니다. 죽음이 없으면 삶이 없고 삶이 없으면 죽음 또한 없다는 불교식 윤회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 면에서 가득 찬 달이 그믐으로 갔다가 다시 초승으로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다시는 달을 볼 수 없겠지요. 초승은 삶이자 희망입니다. 저렇게 초라한 것이 언젠가는 가득 찰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달은 결코 그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단지 사람살이에서는 그 믿음이 깨어질 때가 많기는 합니다 - 보름이 그믐으로 가지 않는다면 이 땅의 가련하고 힘든 천민들은 결코 희망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저 달도 언젠가 지겠지’라는 한가닥 위안이 현재 삶의 고달픔을 견디게 하는 작은 희망일 테니까요. 

보름달이 집니다. 가득 찼다고 자만하던 달덩이가 조금씩 이지러집니다. 아고! 깨소금이다! 그렇게 의기양양하더니 결국은 가는구나, 그러게 있을 때 베풀지 그랬어, 너도 늙고 힘 떨어지니 누구 하나 돌보는 사람이 없구나 싶습니다. 달은 점점 작아지고 작아져서 손톱만큼 작아집니다. 이제 보이지도 않습니다. 존재조차도 흐릿합니다. 사람들은 달도 없는 깜깜한 밤을 견뎌내며 기다립니다. 초승이 내일인데 달이 뜨려나, 어두운 밤이 걷히려나 기다립니다. 기다리던 작은 달이 새끼 손톱만큼 보입니다. 암흑천지의 밤이 조금씩 밝아집니다. 사람들은 기대합니다. 어여 커서 우리님 밤길 비추어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네 바람대로 달은 커지고 채워지면서 우리네 삶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또 같은 삶이 반복됩니다. 

모든 초승은 모두의 희망입니다. 살기가 너무도 팍팍하고 세상은 불공평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차라리 달 같으면 보름만 기다리면 차고 기움이 분명한데 우리네 사람살이의 기울고 차는 것에는 기한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언제 채워지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지만, 결코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 또한 소름끼치게 무섭습니다. 

달은 차고 기우는데, 보기 좋은 꽃도 열흘을 못 넘기는데 이놈의 사람살이는 왜 이리 팍팍할꼬 싶습니다. 오늘도 또 초승달이 떴습니다. 저 달이 날카로운 비수(匕首)처럼 보입니다. 저 비수를 들어 바르지 못한 것들, 썩은 것들, 고름이 가득 찬 것들, 허욕과 욕심에 눈먼 것들, 제 한 몸 주체를 못하고 사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을 가르는 비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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