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와 봄
매화와 봄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3.0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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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흔히 초봄에 날씨가 추울 때 쓰는 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있지만 사실 이 말은 추운 날씨 때문에 나온 말은 아니다. 봄이 되어 날은 풀렸지만 꽃이 보이지 않는 삭막한 풍광에서 말미암은 말인 것이다. 이 반대의 상황도 있다. 꽃이 피어 봄이지만 날씨는 여전히 추워 봄 같지 않은 경우가 그것이다. 음력 2월에 핀다 하여 이월화(二月 花)라고 불리는 매화는 추운 날씨에 꽃을 피워 봄 분위기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 꽃이다. 당(唐)의 시인 운수평이 만난 매화도 추운 봄의 매화였다.
 
◈ 매화그림(梅畵圖)
雪殘何處見春光(설잔하처견춘광) : 아직 잔설이 남았는데 어디서 봄빛을 찾을까
漸見南枝放草堂(점견남지방초당) : 초당 남쪽에 매화나무 꽃가지 점점 피어나네
未許春風到桃李(미허춘풍도도리) : 따뜻한 봄바람에 복사꽃 살구꽃 피기 전에
先敎鐵幹試寒香(선교철간시한향) : 쇠같이 단단한 가지에 차가운 향기 먼저 번지네
 
달력으로는 봄이지만 날씨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여기저기 잔설(殘雪)이 남아 있어서 지금이 겨울인지 봄인지 당최 분간이 되지 않는다. 봄의 풍광으로 꽃을 빼놓기 어려운데 어딜 보아도 꽃이 잘 보이질 않는다. 도대체 꽃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조짐은 있다. 겨우내 마당 한켠에서 웅크리고 있어 잘 보이지 않던 매화나무의 남쪽 가지가 초가집에 드리워지는 모습이 차츰차츰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여태껏 보이지 않던 매화나무 가지가 보이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꽃이 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봄이 한창 무르익고 나서야 꽃을 피우는 복숭아와 오얏나무는 초봄의 찬바람 앞에서는 아예 꽃을 피울 엄두를 못 내게 되어 있다. 

이것을 시인은 조물주가 이 나무들에게 봄바람이 도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리 조물주일지라도 봄꽃을 본격적으로 피게 하는 대사(大事)를 앞두고는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조물주는 연습이 필요했고 그가 연습 대상으로 삼은 것이 바로 매화이다. 

겨우내 추위에 굳고 굳어서 쇠막대처럼 단단해진 매화나무 가지로 하여금 시험 삼아 차가운 향기를 피워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추운 날씨에 피는 매화꽃을 조물주의 시험 결과라고 한 것은 감각적이고 재치가 넘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이 그린 매화의 모습은 실제 본 모습이 아니고 그림에서 본 모습이다. 그림에서 본 모습을 실제 이상으로 실감 나게 그려낸 시인의 솜씨가 참으로 탁월하다.

매화는 봄꽃일까? 아니면 겨울꽃일까? 봄에 피는 겨울꽃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입춘(立春)도 지나고 설도 지나고 날짜 상으로는 분명히 봄이 온 것인데 날은 막상 봄이 아니다. 여기저기 잔설(殘雪)이 남아있고 봄꽃은 꽃망울을 터뜨릴 엄두를 못 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봄이 온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데 이때 봄이 왔음을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있으니 매화가 바로 그것이다. 날씨가 아무리 춥더라도 사람들은 매화꽃을 보는 순간 이 추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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