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 정선옥 <음성도서관장>
  • 승인 2015.03.09 18: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음성도서관장>

햇살 가득한 봄이 오니 집안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이사를 하지 않아 책, 옷, 이불, 그릇, 화분 등 온갖 물건들로 넘쳐났다. 집안에 살림 도구가 너무 많다. 서랍에는 아이들 어릴적 쓰던 크레파스, 필통 등 학용품이 즐비하다. 물건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버릴 방법을 찾다가 도서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선현경·예담)’를 읽었다. 만화가 이우일의 부인이기도 한 선현경의 글은 간결하고 담백해서 좋다. 일본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인 마스다 미리와 닮았다.

이 책은 저자가 1년 동안 실천한 ‘하루에 1가지씩 버리기’ 프로젝트다. 물건을 버리며 추억을 꺼내기도 하고 글과 그림으로 남기며 자신만의 이별 의식을 치른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양말, 과월호 잡지, 유행 지난 옷, 굽 높은 구두, 더는 쓰지 않는 모자, 색색의 원석들이 박혀 있는 목걸이 등 저자는 매일 하나씩 버리며 추억을 이야기한다. 여행하면서 산 목걸이, 티셔츠, 장식품들은 그 당시엔 예뻐 보이지만 일상에서 하기는 대부분 부담스럽다. 그녀는 여행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친구를 만날때 주렁주렁 매달고 나가 예쁘다고 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선물한다. 내게는 이제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게 유용한 물건이 된다면 소소한 기쁨이다.

저자는 지금은 입지 않는 빈티지 패딩 점퍼, 회색 개더스커트를 정리하며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학창시절에 이 옷을 좋아해 주었고 늘 붙어다니며 모든 걸 공유하던 관계지만 몸이 멀어지면서 마음도 멀어짐을 슬퍼한다. 친구라도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관계는 서서히 멀어진다. 헤어지고 만남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 아린 기억으로 남는다.

얼마전 우리집 거실을 정리했다. TV 거실장 옆에 놓여 있던 2단 책꽂이는 서재로 옮겼다. 책꽂이가 있던 자리에 원목 책상을 놓고 나만의 공간으로 꾸몄다. 늦은 밤 그곳에서 성경 필사를 하거나 일기를 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빈 화병 두개는 도서관으로 가져가 허전한 공간에 두었더니 도서관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몇년전 도서관 행사 진행을 위해 큰 맘 먹고 산 원피스는 길이가 짧고 입을 때마다 불편해서 과감히 친구에게 주었다. 피아노 위, 책장 위에 놓여 있던 오래된 액자들은 사진만 보관하고 액자 틀은 버리고 나니 공간이 쾌적해졌다.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은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겠다. 조만간 액세서리도 정리해서 하나씩 떠나보내야겠다. 저자처럼 사람들 만날 때 주렁주렁 달고 나가 예쁘다고 하면 선뜻 내어줄까? 언젠가 선배의 팔찌가 예쁘다고 하니 즉석에서 선뜻 내어주는 그 마음에 감동했는데 나도 지인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하나씩 버리기 시작하면서 식료품 외에는 물건을 사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만 소유하고 욕심내지 말아야겠다. 한권의 책이 내 삶의 방향을 제시할 때가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