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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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5.03.0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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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최근 국회가 주요 법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또 한편의 코미디를 연출했다. 코미디 양산이 우리 국회의 장기 중 하나이지만 갈수록 질이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통과되자마자 대수술이 필요한 불구 판결을 받았다. 압도적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킨 여야는 바로 다음날 천연덕스럽게 수정과 보완이 불가피한 ‘어설픈 법안’임을 고백했다. 그 다음날 대한변협은 이 법안에 대해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한국교총 등 관련단체의 헌법소원도 이어질 전망이다. 법안을 심사하고 본회의에 상정한 국회 법사위 위원장은 “여론 때문에 숱한 결함을 안은 법을 서둘러 졸속입법한 데 대해 자괴감이 크다”고 말했다. 무책임하기 짝이없는 이 발언은 국민의 자괴감까지 키웠다.

보건복지위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은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상임위에서 찬성했던 의원 일부는 본회의 표결에서는 기권함으로써 부결에 동조했다. 여론이 들끓자 4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여당 원내대표는 “반대나 기권한 의원들이 어린이집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나름의 소신을 따랐을 것”이라고 변명했다. 상임위에서 찬성하고 본회의에서 기권한 의원의 소신을 말한 것인지 궁금하다. 소신껏 부결시켰다는 법안을 다음달 다시 처리하겠다는 소신은 어느나라 소신인지도 궁금하다.

담뱃갑에 의무적으로 흡연 경고그림을 넣도록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처리는 무산됐다. 상임위는 통과했지만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흡연권과 행복추구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반론이 수용됐다고 한다. 정부가 국민 건강을 명분으로 담뱃값을 대폭 인상한 것이 불과 몇 달전이다. 흡연자 입장에서 담뱃값 인상은 경고그림보다 흡연권을 압박하는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조치이다. 그 때는 침묵했던 의원이 이번에는 흡연자의 행복권까지 들고나온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 법안은 그동안 12차례나 입법이 시도됐지만 번번이 좌초했다. 담배업계의 로비에 국회가 굴복했다는 설이 파다한 이유이다.

김영란법을 졸속 처리한 여야는 여론을 따르느라 법안 내용이 부실한데도 처리를 서둘렀다고 둘러댄다. 그러나 이 말을 믿어줄 국민은 많지않다.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다른 법안은 부결이나 유보 처리해놓고 여론 운운하는 것은 유권자를 우롱하는 행위다. 이러니 국회가 어린이 안전과 국민 건강은 외면하고 표만 좇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국회는 정부 입안 후 4년 가까이 끌던 김영란법을 마침내 처리했다고 자위하고 있지만 법안을 심각한 논란에 빠트림으로써 실현성을 떨어트렸다는 비판이 더 크다. 공직자 윤리 강화를 목적으로 한 법안의 적용 범위를 슬그머니 민간까지 확대해 법안의 본질에서 벗어난 논란만 양산한 것이다. 민간에 대해 국가권력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에서 언론이 공직과 동일하게 법적 규제를 받는 것이 합당하냐는 논란에 이르기까지 답을 얻기 쉽지않은 논쟁거리들이 사회에 던져진 것이다. 이 법의 발효 시기를 자신들의 임기가 끝나는 1년 6개월 뒤로 미룬 속셈도 훤히 들여다 보인다. 

국회가 법안 처리 과정에서 빚은 오류와 실수를 만회하려면 시행 유보기간에 법안을 완벽하게 정비해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특히 공직자가 이해관계에 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해충돌방지’ 부분을 되살려 법안의 취지를 충분히 실현해야 한다. 법안 보완을 미적거리거나 꼼수를 부리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어떤 심판을 받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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