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질문으로 소통해요
열린 질문으로 소통해요
  • 박숙희 <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5.03.0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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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박숙희 <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그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는 ‘직지’ 하권 21장 응암화 화상(應菴華 和尙)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번역 및 강해(1998년)를 참조했음을 밝힌다.

응암화 화상이 말씀하셨다. “옛날의 스님들은 마음눈이 밝아지지 못함에 화급하게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갔다. 그래서 시정하여 하루아침에 마음눈이 활짝 밝아짐. 그러면 본원의 힘으로써 산 숲 속에 자취를 감추어 20년, 30년 여러 생의 계획을 마련한다. 그래서 마음과 의식을 갈고 닦아 털끝만한 허물도 없앤다. 즉 경계를 만나거나 인연을 만남에 장벽과 와력 같이 속세의 생각 없이 큰 허공처럼 맑고 고요히 금강의 정체를 말할 수 있다. 정나나(淨)하고 원타타(圓陀陀)한 연후에 공용이 없는 것으로써 수행함이라. 비록 세상에 순응할 마음은 없으나 세상에 순응하는 마음도 항상 간단이 없다. 즉 중생을 제도할 마음 없이 중생을 제도할 마음이 다하지 않는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옛날의 노숙(宿)들은 도가 있는 이에게 나아가 그것을 시정했기 때문. 계합하여 증독한 묘가 밝은 태양 10개가 함께 비치는 것과 같은데 어찌 섣불리 그 법을 계승한 자 있겠느냐?

화급(火急)이란 굉장히 빨리, 성급한 것을 말한다. 즉 번갯불이 번쩍하듯이 빠른 시간을 화급이라고 한다.

산 숲 속에 자취를 감추어 20년, 30년 여러 생의 계획을 마련한다는 것은 다생(多生)동안 공부만 하려는 것이다. 거기서 죽든지 살든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생명을 걸고 공부만 하는 것을 변루생계(辨累生計)라고 한단다.

섬(纖)이란 지극히 작은 것이다. 이처럼 마음의 때를 전부 다 제거하면 털끝만한 허물도 없어져 여러 가지 좋고 나쁜 인연과 경계를 만나도 그것에 비중을 두거나 대단하게 보지 않고 기왓장이나 자갈같이 본다는 것이겠다.

정나나(淨)는 한 점 때가 없고 한 올도 걸치지 않는 순수한 그대로, 벌거벗은 그대로를 말한단다. 어린애가 세상에 나올 때가 정나나한 것이란다.

원타타(圓陀陀)란 둥글어서 하나도 흠결이 없는 것이겠다. 모가 나서 귀퉁이가 깨지거나 파손된 것 없이 둥글고 하나도 흠이 나지 않는 것이란다.

“여심일(如十日)이 병조( 照)라, 태양 열 개가 함께 비추는 것과 같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밝은 것을 말한다. 태양 하나만 비추어도 밝은데 태양이 10개가 비추면 얼마나 밝은 것인가? 도가 지극히 밝아지는 것을 비유한 것이란다. 

옛날 선지식이 마음공부를 할 때 그야말로 위대한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 시정을 받고 가르침 받아 안 다음. 산중에 들어가 20년, 30년 목숨을 걸어놓고 마음공부 해서 그 마음이 깨끗하게 되면 중생을 교화하러 나왔단다. 이는 경솔하게 아무렇게나 그 법을 이고 매는 것은 아니라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듯 열린 질문이란 응암화 화상 말씀처럼 정나나(淨), 원타타(圓陀陀)같은 것이 아닐는지. 이는 ‘예, 아니요’로 답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빨리 변화시키고 싶은 조급함과 불안감은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한 긍정적인 변화, 즉‘∼까?’와 ‘ ∼어때요?’로 끝나는 문장을 써 효과적으로 소통해봄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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