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의 봄
우암산의 봄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5.03.0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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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심억수 <시인>

지난 주말 우암산에 올랐다. 우암산은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있지만 어떤 등산로를 택하든 길게 잡아 한 시간 내외로 등반할 수 있는 코스다. 

청주시민은 우암산에서 일상에 찌든 심신을 정화 시킬 수 있으니 행복하다. 높지 않은 우암산은 그냥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녀오기에 딱 좋은 곳이다. 

산기슭의 소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땅이 많이 녹아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시간이 정지된 듯 그날이 그날인 것 같았는데 우암산은 오차 없이 계절을 순환시키고 있었다. 

얼었던 강물도 풀린다는 우수도 지나고 개구리가 입을 뗀다는 경칩을 지나고 보니 벌써 봄은 우리 주변에 와있다.

봄을 시샘하는 눈발이 흩날린다. 아마도 이번에 내리는 눈은 아쉽게 떠나야 하는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일 것이다. 

며칠 따뜻했던 날씨 탓에 이제는 추위가 아주 가버렸을 거라고 성급하게 고개를 내밀던 새싹들이 때아닌 눈발에 한껏 놀라 몸을 움츠린다. 

떠나는 것들은 왜 항상 아픈 상처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지 도통 그 속내를 모르겠다. 겨울은 떠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 성깔을 버리지 못하고 끝내 심술을 부린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가는 것처럼 인생사 또한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겨울이 떠나면 봄이 찾아오듯 아픈 상처를 남기고 떠난 사람이 있으면 꽃보다 더 환한 웃음을 웃게 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모진 바람도 잦아들 것이다. 하늘을 덮고 있는 저 잿빛 구름도 곧 걷힐 것이다. 

제아무리 눈발이 흩날려도 우암산은 축복처럼 봄을 산란하고 있다. 

아기들의 천진한 눈망울처럼 신비하고 무궁무진한 꿈과 희망을 안은 봄이 태어나고 있다. 이제 다시는 어깨를 웅크리고 종종걸음칠 일은 없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세상만사 모든 일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그 보임이 다르듯이 계절의 느낌 또한 그런 것 같다. 

사계절 중 겨울은 유독 우리 곁에 길게 머무는 느낌이 든다. 

좋은 것들은 더디게 왔다가 빨리 사라진다. 괴롭고 불필요한 것들은 빨리 왔다가 오래 머문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겨울의 끝이 보인다. 긴 겨울이 가기에 얼른 마중하고 싶은 봄이지만 눈발에 퍼렇게 멍든 봄은 선뜻 안기지 않고 새침데기처럼 모른 체한다. 

바람이 제아무리 한겨울 흉내를 내며 성깔을 부려도 우암산은 떠나는 겨울의 마지막 앙탈을 느긋하게 받아주는 여유를 보인다. 

드문드문 흩날리던 눈발이 비로 변해 내린다.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가 녹아내려 질퍽하니 발이 빠진다. 

우암산의 봄은 어느새 내 마음에 덕지덕지 쌓인 떠난 사람에 대한 미련의 먼지들을 털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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