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그리고 다시 채우기
비우기 그리고 다시 채우기
  • 정상옥 <수필가>
  • 승인 2015.03.0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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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상옥 <수필가>

아직도 목덜미는 거무칙칙한 줄무늬가 선명하다. 아픔보다 더한 가려움증으로 고통스럽던 지난날의 기억을 상기시킬 양인지 그 흔적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하루의 시간을 분분하게 쪼개며 참으로 바쁘게 살던 때가 있었다. 밤이면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땅속으로 꺼지듯 잠들곤 했지만 전천후 같은 생활이 열정인줄 알았다. 그렇게 동분서주를 반복하던 어느 날, 결국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왔고 그제야 늘 촉박했던 내 삶의 시간들이 느슨해졌다.

거미줄 같던 시간을 벗어나 병원침대에 누워 내 몸으로 한 방울씩 들어가는 수액을 바라보다가 문득 여태껏 자아실현을 위해 한일이 어떤 것일까 의문이 드는 순간 허탈감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돌아보니 열정이라 내세웠던 시간들은 그저 평범한 일상의 그림자들일뿐이었다. 

며칠동안 호된 병치레를 한 후 일상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수년동안 넘나들던 두어군데 문학 강의실에 내게 안식을 주고 싶다는 이유를 붙여 과감하게 사직을 통보했다. 그때 그 기분을 무엇이라 받아들여야 할까. 매주 둥지처럼 찾아들던 교실과 늘 마주하던 사람들과의 긴 시간들에서 나를 내려놓으니 굴레에서 벗어난 듯 마냥 홀가분해져야 했건만 가벼워진 하루는 무기력이 되어 또 사지를 얽어매는 것이 아니던가. 텅 빈 공간 안에서 미아 같은 내 자아에 무엇이라도 채워주고 변화를 주고 싶었다. 

평소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겉치레를 해보려는 심산으로 몇 가지 액세서리를 산후 먼저 목에 걸었다. 그 순간 서광처럼 빛나는 목걸이의 화려함은 힘을 잃은 내 자존감까지 채워주는 듯 했다. 목걸이 하나에 의기소침했던 의식이 고개를 빳빳하게 드는 홀연 변개하는 여인이 과연 지금까지의 나인가도 싶었다. 

거울 앞을 한참동안 떠나지 못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잠이든 그날 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단이 난 것이다. 화려함속에 독성을 숨기고 있던 목걸이는 목덜미를 중심으로 이곳저곳에서 붉은 반점들을 토해내며 잠재돼있던 내 몸 속의 금속 알레르기를 드러냈다. 아픔보다 더 독한 가려움증으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며 내게 맞지 않는 것들을 밀어낸 것이다.

그날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며 자각했다. 촉박한 시간들로 인한 압박감이나 사람들과 부대낄 때마다 누구를 위한 시간 할애였나를 묻는 나 자신에게 답하지 못하고 회의감에 괴로웠던 이유가 나 자신에게 있었음을 알았다. 그 빈 가슴을 허접한 액세서리 따위로 채우려했던 것도 어리석은 과욕이란 것도…. 참된 품위는 화려한 외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분수에 맞는 처신과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게 다스릴 줄 아는 지혜와 겸손으로 채우는 것이라는 것을.

봄이 멀지 않았다. 혹한을 이겨낸 새봄의 기운이 온천지에 퍼져오면 좀은 느긋한 하루로 여유를 찾는 삶을 채워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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