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비밀은 요’(2)
‘청주의 비밀은 요’(2)
  • 김영미 <청주시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 승인 2015.03.0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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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김영미 <청주시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상당산성의 서문이다. 미호문( 虎門)인 서문의 미는 활의 양끝을 가리키는데 그곳이 호랑이가 뛰쳐나가는 모습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상당산성의 미호문에서 호랑이가 활처럼 뛰쳐나가니 청주읍성의 동문에 호랑이를 막도록 벽인문을 만든 것일까.

동문에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옛 남궁병원 앞에서 다시 굽은 도로가 나오고 남문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청주읍성을 한 바퀴 돈 셈이다. 성의 둘레는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과 비슷하고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보다는 조금 더 길다. 

읍성의 옛날 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청주읍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청주읍성도가 그나마 남아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 지도에는 동헌과 병영, 감옥과 철당간, 압각수, 비각 등 읍성내의 주요 시설들이 아주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또 성곽의 구조와 건물의 배치가 실제와 거의 비슷하여 청주읍성의 원래 모습을 그려내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

남문과 북문을 잇는 성안길은 일제강점기부터 ‘본정통’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한 시민단체에서 이름을 공모하여 ‘성안길’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였다.

지금 상당구청이 된 청원군청 안에는 청주목사가 근무하던 관아의 중심 건물인 청주 동헌(東軒)이 있다. 이 건물은 조선 후기 지방 관청 건축을 원형 그대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는 동헌만 남고 모두 없어졌는데 지방의 수령이 추구해야 할 유교적 이념을 담은 집 이름(당호)을 새긴 현판을 걸었다. 청주 동헌에는 청녕각(淸寧閣)이라고 새긴 편액이 걸려 있는데 ‘호서읍지’의 기록에 의하면 영조 때 이병정이 창건하여 처음에는 근민헌(近民軒)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었다. 그러나 고종 5년(1868년) 이덕수가 다시 지으면서 청녕각이라고 하였다. 근민헌은 ‘백성과 가까운,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백성이 가깝게 여기는’ 수령이 되고자 하는 뜻에서였던 것이다. 아마도 관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백성과 가까이하는 행정을 펼치겠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청녕은 노자(子)에 나오는 구절로 ‘세상이 평화롭게 다스려지는 모양’이라는 뜻의 청녕각으로 바뀐 것이 고종 5년(1868년)이다. 예나 지금이나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 것은 누구나 다 같은 바람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정보화 시대다. 원하는 자료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활용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관광객도 지식이 높아져 웬만한 해설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해설사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슬쩍 떠보려고 하는 이들도 가끔 있다. 해설도 전문성이 있어야만 한다. 대충이나 어설프게는 통하지 않는다.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진부하고 식상한 안내 푯말도 이제 더 이상 관광객이나 뭇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교통의 중심지이며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충청북도 땅에 관광객의 관심을 끌어들이려면 관광지 푯말부터 새롭게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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