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는 입이 아닌 가슴으로 품는다
태극기는 입이 아닌 가슴으로 품는다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02.26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에… 一筆

할리우드 영화중엔 아메리카의 우월성이나 미국적인 가치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려는 것들이 많다. 여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우리가 ‘미국스럽다’고 치부하는 이른바 영웅만들기다. 

대표적인 것이 1998년 개봉돼 지금도 잊을만하면 TV 등을 통해 리바이벌 되는 ‘라이언일병 구하기’다. 2차대전에 참전한 라이언 가(家)의 4형제 중 이미 3형제가 전사한 상황에서 막내인 라이언 일병을 생환시키기 위해 벌이는 각종 전투 신(scene)은 연출에 있어 반전(反轉)의 대가로 통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만나 실제보다도 더한 감흥을 만들어 냈다. 

통상 이런 영화는 그 주제의식이 다소 과장되거나 뻔한 스토리전개로 식상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관객들은 거대 국가가 일개 국민의 안녕과 생명을 위해 마지막까지 올인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가와 나’라는 관계설정에 대해 새로운 인식과 경험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런 영화를 통해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려 했을테고 이를 본 국민들은 역으로 국가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확인하는 계기로 삼았을 것이다. 요즘도 6.25 전사자의 유해가 나오기라도 하면 국가가 할 수 있는 모든 예(禮)를 다 쏟아붓는 미국의 힘은 바로 이런 데서 비롯될 지도 모른다. 세계의 온갖 잡동사니 인종들이 하나의 용광로(melting pot) 안에서 서로 지지고 볶으며 갈등면서도 세계 최강국의 입지를 고수할 수 있는 비결은 다름아닌 이같은 상호 믿음과 신뢰인 것이다.

갑자기 나라 전체에 태극기 열풍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장면, 즉 주인공 부부가 옥신각신 다투다가 국기 하강식이 진행되자 싸움을 멈추고 국기를 향해 예를 갖추는 모습을 각별하게 받아들인 것이 단초가 됐다.

사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6, 70년대는 국기하강식 뿐만 아니라 선생님을 대할 때마다 코흘리개 국민(초등)학생까지 소리높여 외쳤던 재건(再建)! 이라는 경례구호가 나라의 일사불란함으로 대표되던 시기였다.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면 국민적 일체감 조성을 위한 상징성이 강조될 수 밖에 없었고 바로 태극기 하강식은 이러한 ‘국가주의’를 전파하는데 나름대로 기여했다. 

태극기 게양을 강제 내지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이 과연 국민들한테 얼마만한 호응을 얻어낼 지는 미지수다. 이념갈등과 빈부격차, 여기에다 사회의 각종 안전망이 흔들리면서 나라의 일체감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데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억지춘향식으로 태극기를 내건다고 해서 없던 애국심이 갑자기 되살아날 지는 지켜볼 일이다.

태극기의 부활(?)을 꾀하려는 정부가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의 태극기 물결을 예로 드는 것도 생뚱맞다. 그 때는 신바람과 뭔가 이루겠다는 기대감 때문에 자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지 결코 강요된 게 아니었다. 만약 ‘붉은악마’를 무슨 법이나 제도적으로 이끌려고 했다면 당시의 분위기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국가 책임자들이 국민들한테 애국심을 바라고 싶다면 태극기 게양보다 더 시급한 게 있고 그 것의 실체가 지난번 설 민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연휴가 끝나자마다 언론들이 이른바 설 민심을 앞다퉈 전했지만 모두가 헛다리를 짚었다. 정치불신이나 경제난, 취업난, 조세불만, 청와대 불통, 빈부격차 등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올해 설 민심에서 특히 두드러졌고, 그러기에 많은 뜻있는 이들을 두렵게 만든 것이 하나 있다. 원초적인 ‘국가패배주의’다. 대학생이나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들조차 요즘처럼 정서적 패배감을 토로한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같다. 정직하게 살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은 차라리 약과일 수 있다. 국가와 사회의 정상적인 기제(機制)에조차 무조건인 반감과 냉소였다. 

일개 비서에 불과한 비서실장 때문에 나라가 흔들리고 국가 고위직을 하겠다는 사람들의 예외없는 병역기피와 투기, 축재, 특권의식, 여기에다 아직도 9명이나 갇혀있는 세월호를 방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들은 지금 “과연 누구를 위한 애국인가?”를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