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
비움과 채움
  • 이은희 <수필가>
  • 승인 2015.02.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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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희 <수필가>

힘이 빠지고 군살과 기름기를 뺀 글씨란다. 글씨는 문외한이 보기엔 그저 굵고 가늘다. 글씨에 무슨 살과 기름기가 있어 빼단 말인가. 선생의 문화해설이 이어진다. 추사 김정희(正喜, 1786년∼1856년)가 생의 마지막 무렵에 쓴 달관한 글씨란다. 여느 대련과 비교하니 다르다. 글자 획을 굵게 내려 꺾거나 옆으로 비껴치는 획이 끊어질 듯 이어진다. 마치 문을 여닫는 것처럼, 한 글자 안에서 획끼리 마주 보며 소통하는 듯하다. 

추사 고택 안채 대련 앞이다. 묵향이 짙게 흐르는 댓돌 위에서 세로로 길게 쓰인 글씨를 바라본다. 나는 이곳을 서너 번 지인과 다녀갔지만, 오늘처럼 대련의 글씨와 내용이 나의 마음을 울린 건 처음이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자의 모임이다

대련에 쓰인 내용은 지극히 평범한 글이다. 가장 좋은 반찬이 고기나 생선구이 가 두루 갖춰진 수라상이 아니다. 밭에서 흔하게 자라는 오이나 생강, 콩으로 만든 두부나 나물이 있는 두레밥상이다. 그 밥상에 부부와 아들딸, 손자가 모여 앉아 함께 나누어 먹는 즐거움이 가장 훌륭한 모임이란다. 조선 최고 예술가의 입에서 나온 소리고,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추사에게서 우러나온 말이라 더욱 놀랍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가족을 떠나 자신을 대표하는 모임을 말했을 것 같다. 그러나 추사가 그리 말한 데는 이런 의미도 있을 것 같다. 집안이 편안해야 잡념 없이 글과 글씨가 물 흐르듯 써진다는 소리가 아닐까. 결국, 몸에 좋은 반찬으로 건강을 채우고, 가정을 평안히 이끌어 머릿속을 비워 작품에 몰입한다는 뜻이리라.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보단 군더더기를 과감히 덜어내 주제를 드러낸다. 기행수필이 그날의 일정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았던 것 중 나의 마음을 흔들거나 가슴을 울린 것에 초점을 맞춰 주제화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 

추사의 젊은 시절 굽힐 줄 모르는 강한 성품이 글씨에도 드러난다. 그러나 봉은사 현판 ‘판전(板殿)’ 글씨는 일전에 썼던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글자 하나의 크기가 어린애 몸통만 한 대자로, ‘판전’ 두 글자를 욕심 없는 필체로 완성한다. 이 글씨가 결국 추사의 절필이다. 인생 말년에 모든 것에서 해탈한 듯 마음을 비우고 쓴 것이다. 그리 보면 삶은 채움과 비움의 연속인가 보다.

인간의 삶도 비슷하리라. 곳간을 채우고자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은 결국, 부질없는 짓. 정녕 땅보탬하러 갈 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늙어가거나, 틈을 내 고택을 한유하게 거닐며 문자 향을 느끼는 일.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 오늘은 동생들과 예전처럼 큰 양푼에 갖가지 나물과 보리밥에 고추장을 버무려 볼이 메어지도록 먹고 싶다. 상상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돌아 입맛이 돌아서고 세상 살맛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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