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채기하는 까닭
재채기하는 까닭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5.02.2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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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휴일이 길어 늘어지다 보니 몸이 늘어졌나 보다. 긴장 속에서 몸이 아플 리 없다. 설 연휴랍시고 닷새를 논 탓이다. 피곤하면 떨리는 눈두덩도 영 풀리지 않는다. 

게다가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프다. 일 좀 잘 해보려고 했는데 의도와 다르게 잘 풀리지도 않고, 한쪽이라도 봐줬으면 했는데 이쪽저쪽 할 것 없이 다 나를 탓하니 기력이 쇠했던 모양이다. 

탈진(exhausted)이다. 마음이라도 신나야 몸이 버텨주는데, 마음이 위로받을 데가 없다고 생각하니 몸이 고장이다. 

몸살이다. 몸살에 웬 갈비뼈가 아픈지 걸을 때마다 끙끙 소리가 절로 났다. 어젯밤에는 뼈가 아파 서너 번을 깼다. 그래도 5시 55분에 일어나서 몸을 추스르고 나섰지만 영 몸이 말을 듣지 않고 통증만 심했다. 머리는 아프고 몸은 시큰거렸다. 

평소 같으면 약도 안 먹고 버티겠지만 사람을 만나야 되는 입장이고 일을 이루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보건소를 찾았다. 무슨 알콜 중독자처럼 몸이 벌벌 떨리는 것이었다. 아침에 진통제 두알을 먹고 나왔는데 약효가 다 됐는지 오한이 찾아왔다. 

평생 링거액을 맞아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글쎄, 소소한 수술 때는 맞았겠지만 수액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사람을 다소 무시하는 입장인데도- “나 좀 놔달라”고 새로 온 보건소 의사선생께 말했더니, 학교 보건소에서는 주사행위가 금지되어 있단다. 

그 양반은 분명 양의, 한의 자격증이 모두 있는 분인데도, 보건소라는 체제가 그런가 보다. 물론, 내 머릿속에서는 일반병원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말이다.

안 되겠다 싶어 동네 의원을 찾아갔다. 간호사가 열이 있느냐고 묻기에 없다고 했는데, 이게 웬일, 귀에 꼽아보더니 38.5도란다. 내가 열을 못 느낀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손도 뜨거워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링거액을 맞으면서 한의사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수액이 순환을 시켜줘서 좋단다. 그리고 오한은 열이 오르기 직전의 것이란다. 고맙기도 하지, 양약과 더불어 한학을 먹으라고 퇴근할 때 약 지어서 들리겠단다. 둘 다 먹으면 금방 떨어진다고. 안습(眼濕)!

목까지 아프더니 기침이 난다. 여기서 묻는다. 감기에 걸리면 왜 우리는 기침을 할까? 기침이 잘 안 다가오면 재채기로 물어보자. 감기에 걸리면 왜 우리는 침 튀기는 재채기를 할까? 

많은 사람은 우리 몸이 바이러스를 몰아내기 위해서 기침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물학 책은 정반대로 쓰여 있어 깜짝 놀랐다. 바이러스가 사람으로 하여금 기침을 하게 만들어 자기네들의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거란다. 

달리 말해 감기에 걸려 재채기를 하는 것은 나의 능동적 행위가 아니라, 바이러스님의 진두지휘 하에 벌어지는 피동적인 증상이라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우리말은 어렵지만 영어로는 쉬운 단어가 있다. 다름 아닌 숙주(宿主)인데, 영어로는 호스트(host)다. 바이러스가 호스트를 시켜 자신을 널리 널리 퍼지게 한다니, 내 몸 숙주 선생이 같잖아 보인다. 

그러나 생물학 책의 결론은 이렇다. 바이러스도 숙주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단다. 그럼 자기도 죽으니까. 따라서 공존만이 전략이란다. 나, 오늘 고통과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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