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에 대하여
늙음에 대하여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5.02.2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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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새해가 되면서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마음만 내면 십여 분이면 얼굴을 볼 수 있는 근거리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잊어버릴 만하면 서로 안부를 전화로 확인한다. 늘 비슷한 내용으로 가족들의 안부를 물은 뒤 대화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오늘의 화두는 나이다. 요즘 들어 거울보기가 겁이 난다는 그녀는 “너는 안 그러니?”하며 넌짓 묻는다. 그러며 한술 더 떠 눈가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벌써 검버섯이 군데군데 피어난다고 한숨 바람이다. 확실하게 몸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며 여기저기 멀쩡한 곳이 없다 한다. 

전화기를 들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여자가 “너라고 별수 있니?”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전화 저편 그녀의 화두는 나이가 아니라 이제는 운동으로 전환됐다. 나이보다 젊게, 아프지 말고 살려면 무슨, 무슨 운동이 최고라며 추천을 한다. 그녀의 권유에 그저 나는 응, 응 거리며 건성건성 대답만 하고 있다. 여전히 거울 속 여자는 전화를 들고 이리저리 얼굴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낯빛이 오락가락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기어이 한마디 쏘아붙인다. “야 그런데 왜 마음은 나이를 제대로 안 먹고 제 분수도 모르고 이 팔 청춘 흉내를 내는 거니?” 전화기 너머 친구가 한바탕 웃으며 “마음이라도 젊게 살아야 덜 늙지”하며 다음에 얼굴보고 밥 한번 먹자며 전화를 끓는다.

나는 여전히 거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오십하고도 이제 셋을 막 넘긴 여자의 전신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에 초연한 척 살아왔다. 작은 키에 먹어도 살이 붙지 않는 체질과 작은 얼굴 덕분에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그럴 때마다 호기롭게 웃으며 “여자나이는 목욕탕을 가보면 표시가 난다는데 저랑 목욕탕 한번 같이 가실래요”라며 은연중에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것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제아무리 늙지 않으려 버둥거려 봐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이다.

거울 저편 여자도 몸은 흐르는 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늙어가고 있는데 마음은 여전히 제 분수를 모르고 청춘에 머물기만을 고집하고 있다. 얼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봉실하게 솟은 배가 눈에 거슬려 손바닥으로 두드려본다. 저 뱃살을 빼 보겠다고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친 것이 몇 번인지, 큰소리가 헛소리가 되어 갈쯤이면 이 정도 뱃살은 나잇살이라며 얼렁뚱땅 멋쩍게 웃어버린 적도 족히 수백번은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뱃살을 빼겠다고 큰 소리 겸 헛소리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아마도 거울 속 저편 여자의 마음은 평생 몸이 늙어가는 것을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 늙어 간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이 하는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어가며 늙어갈 것이다. 늙는다는 것이 결코 기쁜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서글퍼 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며 늙어가기 때문이다.

앞으로 혹시라도 누군가 나를 보고 “어머 나이보다 어려보이네요” 해주면 그때도 나는 여전히 배를 두드리며 “저랑 목욕탕 한번 같이 가실래요”라며 내 늙음에 대하여 호기를 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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