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2.2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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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할머니” 하고 둘째 손녀가 현관으로 들어온다. 설날 아침에 화사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것이 봄날 양지바른 언덕에 핀 복사꽃 같다. 목엔 어제 나와 함께 동네슈퍼에서 사온 핑크색 목걸이가 걸려 있다. 그 모습이 어찌 그리 귀엽고 예쁜지 두 팔을 크게 벌려 품에 안는다.

우리 가정은 설 전날 둘째네 가족 넷이 함께 모여 설 준비를 했다. 맏이 내외는 미국에, 막내는 회사일로 함께 하지 못해 영상통화로 그간의 정을 나누었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였다. 음식을 장만하며 손녀들의 재롱에 모처럼 거실엔 웃음꽃이 핀다. 동그란 전을 먼저 빚고 만두를 빚는데 만두피가 모자란다. 난 슈퍼에 가려고 손녀 둘을 보며 “온유 소명아, 할머니와 같이 만두피 사러 갈까?”라고 물었다. 금세 두 눈에 생기가 돈다. 안방 가득히 장난감을 늘어놓고 놀던 것을 뒤로하고 따라나선다.

참 오랜만에 두 손녀를 양손에 잡고 마켓으로 향했다. 늘 유치원에서 근무하며 원생들 손을 오래도록 잡다가 이젠 퇴직해 이런 호사도 누리게 된 셈이다. 작은 손녀는 몇 번인가 꼭 잡은 손을 뿌리친다. 자기 마음대로 걷고 싶은 모양이다. 마을 길 좁은 곳에 도로가 복잡해 두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슈퍼에 도착해 난 만두피와 손녀들이 원하는 귤과 딸기를 바구니에 담는다. 작은 손녀는 슈퍼에 들어서자 급히 입구에 있는 긴 대롱 모양으로 생긴 초콜릿을 고른다. 큰 손녀는 매사에 신중해서 한참을 살피더니 모형 보석함에 발길이 멎었다. 값을 묻자 주인은 그것은 좀 비싸서 만원이라 했다. 작은 것이었지만 아이들 마음이 가도록 온통 핑크빛인 아주 작은 보석함이다.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할 때 작은 손녀는 언니 보석함과 같은 것을 골라 와서 바꾸자는 것이다. 이미 계산이 다 끝났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부족한 액수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보석함이라 열쇠도 있다. 며느리가 열쇠로 보석함을 열자 불빛이 반짝이며 고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함엔 인조진주로 만든 핑크색 목걸이에 하트 모양이 가운데 달려 더 예뻐 보였다. 손녀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내겐 아쉬움이 남는다. 3월이면 둘째가 유학길에 오르기에 네 식구가 모두 동행한다. 출국하기 전에 함께 한 어린 손녀들과의 작은 추억 나들이처럼 느껴진다. 

우리 내외와 어머니만 또 남게 된다. 가끔 손녀들의 귀여운 재롱을 보았는데 몇 년은 곁에서 못 보게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두 손녀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을 가져 한창 기분이 들떠 있다. 헌데 내 마음 한곳은 이렇게 허탈해질까.

손녀딸의 목걸이를 만져 보았다. 신축성 있는 하얀 끈에 한 알 한 알 엮여 원을 만들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예쁜 액세서리가 되었다. 이것을 보니 문득 집을 떠나 사는 아이들이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도 어릴 때는 저렇게 구슬처럼 가족이란 끈에 꿰어져 있다가 갈 길을 찾아 새로운 끈에 구슬을 꿰어 사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어린 시절 끈보다 더 굵은 끈으로 가족이란 목걸이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명절을 통해 멀리 있던 가족들도 한 곳으로 모인다. 혈연이란 끈으로 엮어진 것이다. 인조진주 한 알 한 알이 가늘 한 끈에 꿰어 예쁜 목걸이가 되듯이 혈연으로 맺어진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족이란 끈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니 얼마나 감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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