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맞이하는 설이라는 큰 날
또다시 맞이하는 설이라는 큰 날
  • 김태종<생태교육硏 터 소장 >
  • 승인 2015.02.16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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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얽힌 나만의 기억

김태종<생태교육硏 터 소장 >

어린 날의 명절은 언제나 거북하고 불편했다는 기억이 거의 전부입니다. 지금 와서 나는 명절을 ‘큰 날’이라고 우리말 이름을 붙여 쓰곤 하는데, 그때가 되면 찐득한 기름 냄새 풍기며 부쳐지던 갖가지 명절 음식, 그래도 끈적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입맛을 돋우던 조청을 고아대던 일이 있긴 하지만, 불편하게 많은 불을 때어 방안이 온통 불가마 솥이던 두부 만들던 일과 그래서 평소 아랫목으로만 기어들던 것과는 달리 윗목으로 기어오르다가 끝내는 윗방으로까지 달아나 겨우 잠이 들던 까치설 전날의 그림까지 떠오릅니다.

명절이 불편했던 것은 내 또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명절 음식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 첫번째 까닭이었습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끼니를 해결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그 시절 음식이라면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먹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집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도 설이면 떡국, 추석이면 송편만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내게 밥이 없는 명절은 그야말로 고역일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즐기는 큰 날에 얻어 입는 새 옷이라는 것도 내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새 옷을 입을 때마다 무엇인지 몸에 자연스럽게 와 닿지 않고 부대낀다고 느껴지는 것, 아주 어렸을 적 새 옷을 사다 입혔더니 그냥 울고만 있었다는 기억에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그때의 일까지 설빔이나 추석에 얻어 입는 새 옷도 전혀 즐거움이 아니었으니, 그야말로 큰 날이 그냥 불편하고 괴로운 날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큰 날 저녁 무렵이면 술 취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아내게 하는 싸움질까지….

젊었을 때의 명절은 내게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저 야심으로 가득한 나날들이었으니 그 야심을 채우거나 이루는 일이 아니면 아무런 관심을 두지도 않았으니, 명절이라고 해 봐야 뭐 특별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겁니다.

중년이 되었을 무렵, 나는 야심을 내려놓고 내 삶에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는 한 여남은 해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 시절 내 삶의 이름은 지독한 ‘외로움’이었습니다. 야심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서부터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는지도 어렴풋이 알아차릴 무렵, 내 가까이에 있다고 여긴 사람들이 떠나가는 일까지 겹치면서 고독과의 씨름은 그야말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그 넓고 깊은 강을 빠져 죽지 않고 건너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게로 다가오는 수많은 벗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벗들을 향해 기꺼이 다가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다음 조금씩 내 큰 날이 넉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에 자라난 아이들이 제 짝을 만나 꼭 저를 닮은 아이들을 둘씩 낳았고, 큰 날이면 아비를 찾아와 새끼들 재롱을 즐기게 하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하는 이들의 조금은 분에 넘치는 인사에다 지난해에는 아내의 배앓이 없이 또 막내딸 하나까지 생기는 벅찬 즐거움까지 있으니 굳이 설이나 추석이 아니라도 이제는 그믐에도 보름달을 보는 삶의 행복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설을 코앞에 둔 지금 나는 다시 하나의 꿈을 갖습니다. 이번 설에 아쉬웠던 것은 다음 추석이면 채울 수 있도록 해 보자고, 더 사랑하고 더 안으며 살아보자고, 나를 내려놓고 다른 이들의 존재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가자고, 그래서 지난 입춘에 모실 시(侍)자를 써 놓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고개 숙이기 허리 굽히기, 그리고 한발 뒤로 물러서기’라고 덧붙였는데, 주변의 아는 이들에게 준 그 글씨를 가슴에 새기면서 다시 맞이하는 설, 이번 설에 비로소 한살 더 먹는다는 생각으로 흐뭇한 지금, 바로 지금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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