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 줄 생각에 고르고 깎고…

흥정 재미 `쏠쏠' 사람냄새 `폴폴'
손주들 줄 생각에 고르고 깎고…

흥정 재미 `쏠쏠' 사람냄새 `폴폴'
  • 안태희 기자
  • 승인 2015.02.16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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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앞둔 진천 5일장 북적북적

토박이·외지인 구분없이 친근

오고가는 인사말에 정 가득

28년 호떡집·워낭소리 눈길

저렴한 가격에 넉넉한 인심까지

명절준비 장바구니 가족애 넘쳐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아,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설 연휴를 코앞에 둔 대목을 맞은 지난 10일 진천장터 입구에서 만난 유재윤(51) 충북이·통장 연합회장과 지역사업가인 이재룡(53) 몰 주로 대표는 처음인데도 마치 형제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진천 토박이면서 지역사회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유 회장과 청주토박이면서도 진천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이 대표는 이날 토박이대 외지인(?)으로 장날의 정취에 취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었다.

이들이 처음으로 들른 곳은 시장입구의 호떡집. 인생중 40년을 호떡과 함께 이곳에서만 28년째 지내고 있는 사장님의 입담이 걸다. “장사 잘되유?”라는 유 회장의 인사말에 “장사가 되긴 뭐가 되여”라면서 걸죽한 반죽을 기름판위에서 누른다.

호떡 한개를 입에 물자 까만색 설탕이 스르르 입안에 가득해진다. 유 회장은 “쫄깃하고 달콤하고, 예전에도 이맛이었다”면서 음미한다.

대목장답게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정도로 걷기가 어렵다. 싸게 파는 고깃집에 줄이 서 있고, 한 켠에는 순대와 막걸리로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촌로들이 보인다.

“대목이라 그러면 안되요”라면서 도라지 한개를 더 비닐봉지에 넣으려는 손목을 붙잡는 상인이나 “1개에 3000원, 2개에 5000원”하면서 손님의 이목을 끄는 파프리카 상인의 목소리가 크다.

다행히 큰 키여서 주위를 잘 살필 수 있는 이 대표의 눈에 띈 것이 있었다. 바로 워낭이다. 영화 ‘워낭소리’이후 더욱 친근해진 방울과 방울을 매단 나무 목걸이(?)에 그의 발길이 멈췄다.

“얼마예요”, “6만원입니다”, “직접 만드신 거예요?”, “당연하죠” 몇차례의 탐색전 끝에 6만원짜리를 5만5000원에 흥정했다. 그런데 웬걸, 이 대표는 원래의 금액인 6만원을 상인의 손에 쥐어준다. “흥정하는 재미, 그리고 워낭소리가 워낙 마음에 들어서”라는 게 5000원을 더 준 그의 이유였다.

출향인들에게는 고향집 외양간에서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여물을 먹고 있는 누렁이를 떠오르게 하는 워낭이다.

워낭을 지나치자 8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털장갑을 들었다놨다를 반복한다. 색깔로 봐서는 손주와 손녀에게 주려고 하는 것 같다. 중년의 아저씨도 아줌마도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을 보면 모두 본인것이 아닌 가족을 위한 것이다.

여기도 저기도 장터에 명절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집는 것은 그저 집안 식구들을 위한 것들 뿐이다. 전통5일장에서도 가족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5일장은 인심이 넉넉하고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특히 명절을 앞둔 5일장은 그런 가족애가 넘치는 곳이다.

디지털진천군문화대전에 따르면 진천장(鎭川場)은 진천군에서 가장 큰 면적과 이용객 수를 자랑하는 중심시장이다. 지금도 매월 5일과 10일에 500여명의 상인들이 집결하고, 진천지역 주민들이 몰려드는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장날이면 하나로마트, SSM에 손님이 뚝떨어질 정도다. 진천읍 일원의 도로를 중심으로 조선시대부터 명맥을 이어오던 진천장은 1911년 9월 읍내리 장터거리에 개설됐으며, 지난 2008년 4월 정식 시장으로 등록됐다.

특히 진천장은 전체 점포 수에 대한 이동 점포 수의 비율이 84.1%나 돼 왁자지껄하고, 미로같은 장터의 모습이 어릴적 시골장을 연상케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유 회장은 “이곳에는 대장간도 있었는데, 최근에 사라졌다”고 아쉬움을 토했다.

유 회장은 장을 보는 중간중간 아는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나오셨어유. 어르신”, “요즘 어찌 지내는겨. 통 얼굴을 못봐”, “그 친구 아프다며. 한번 가봐야 하는데” 등 별다른 인사말도 아닌데도, 표정과 눈빛에 정이 가득 들어 있다.

사람들을 비집고 다니다보니, 벌써 배가 고프다. 시장 끄트머리 한 구석에 자리잡은 가설식당으로 향했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눈치를 보다가 재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 간신히 자리를 잡자마자 국밥을 시켰다.

2분 정도 지났나. 금방 나온 따끈한 국밥에는 돼지내장이며, 순대며, 채소가 가득 들어가 있다. 비린맛도 없고, 시골장터 국밥 그맛이다. 그것도 한그릇에 4000원밖에 안한다.

“이렇게 좋은데, 서울사람이나 대도시 사람들이 구경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대표의 안타까움이 녹아난다. “그러게요. 좀 더 지역민도 살고, 상인도 돈을 벌고, 외지인들도 정을 담아가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개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배부르고 날씨도 따뜻하고, 다시 한번 정겨운 진천장터가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유 회장과 이 대표는 이날 각자 마음 한 가득 고향과 정을 담았다.

“다음 장날에 또 봅시다.” 그들의 다음 약속장소는 자연스럽게 장터가 되었다.

/안태희기자

antha@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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