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하며 사는 삶
긍정하며 사는 삶
  • 최 준 <시인>
  • 승인 2015.02.1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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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최 준 <시인>

전철을 탈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이십여 년 저쪽의 얘긴데, 인문학 서적 전문 출판사에서 기획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침저녁으로 이문동에서 출판사가 있는 동대문까지 전철을 타고 출퇴근했다. 퇴근은 자유로웠지만 출근 시간에 맞추어 전철역에 나가다 보니 나와 엇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서로 수인사를 나누지는 않았어도 낯익은 얼굴들이 생겼다. 

그 사람들 중에 아주 인상적인 한 남자가 있었다.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의 그 남자는 추우나 더우나 늘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출근길의 만원 전철역 승강장에 늘어선 대열에 끼어 서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혼자서 콧노래를 불렀다. 전철 출근 경험이 있는 이들은 알 테지만 이른 아침 출근길의 표정들이 어떤가. 하나같이 살이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데스마스크들이 아니던가. 그런 가운데서 혼자 콧노래를 부르는 남자는 아주 특이한 인물이었다.

남자가 보이지 않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남자를 찾았다. 남자의 뒤에 붙어 서서 같은 칸에 오르며 남자의 등을 떠밀어주기도 했다. 남자는 만원 전철에 올라서도 콧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자연히 주위 승객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남자는 다른 눈들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았다. 부대끼고 떠밀리면서도 마치 전철에 혼자 타고 있는 듯 기분을 내고 있었다.

저 사람의 일상은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차림새도 그렇고 승용차가 아닌 전철을 타고 다니는 걸 보면 넉넉한 형편이 아닐 텐데 이런 환경에서도 콧노래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흉내를 내볼까도 생각했지만 숨이 막혀 노랫말이 목에 걸렸다. 

내가 남자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건 어느 날의 예기치 않은 상황 때문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예의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남자의 뒤편에 서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철이 와서 멎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지옥의 문으로 일제히 떠밀려 들어갔다. 나도 남자의 등을 밀며 전철에 오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뒤편에 있던 젊은 여성이 나를 밀치고 남자의 들을 떠밀었다. 나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등을 밀어 태워줄까도 생각했지만 여성이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 전철을 못 타면 지각이라도 하게 되는 듯 안간힘으로 남자의 등을 떠밀었다. 

“아저씨, 아저씨, 제발요. 제발, 한 발짝만 들어가 주세요!”

다급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소리쳤다. 겨우 올라서서 팔만 문에 걸치고 있던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등을 떠밀고 있는 여성을 본 남자는 다시 내리더니 여성의 등을 밀어 전철에 태웠다. 

여성을 구겨 넣은 전철 문이 닫히고 남자는 남았다. 나는 남자의 뒤에 서서 다음 전철을 기다렸다. 그때 남자가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엿듣게 되었다.

“한 발짝씩이나.”

남자는 좀 전의 젊은 여성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는지 그렇게 말했다. 만원 전철에서 한 발짝은 얼마나 엄청난 거리인가. 나는 남자에게서 세상을 살아내는 따스한 긍정의 힘을 발견했다. 긍정에는 어느 정도의 체념도 뒤섞여 있다. 그러고 보면 부정과 긍정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이 팍팍한 현실에서 자신을 긍정하며 사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한 발짝이라도 온전히 내딛으며 세상을 사는가. 전철을 탈 때면 콧노래 부르던 남자가 말한 ‘한 발짝’의 의미를 떠올리며 발끝을 내려다보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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