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걷기예찬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5.02.0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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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내가 기억하는 나의 독립적인 첫 걸음은 유치원 가기였다. 80년대 후반 농촌마을의 유치원이란 지금처럼 노란색 버스가 아이를 반기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일곱살 아이가 직접 유치원을 찾아가야만 하는 시스템이었다. 

학교를 서둘러 가야 하는 오빠 언니들과 함께 할 수도 없었고 농사일에 바쁘신 부모님이 데려다 주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유치원 가방을 메고 봄에는 나비의 팔랑거리는 날갯짓에 눈을 돌리기 바빴고 가을엔 잠자리 잡기에 심취해 있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즐거웠던 걷기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다. 

성인이 된 지금 걷기는 일상이 아니라 운동이 되어 버렸다. 일부러 올레길 혹은 둘레길을 찾아가서 걸어야 하고 내 발을 편안하게 지켜줄 트레킹화는 필수로 신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집 앞 가게로 물건을 사러 갈 때에 내 손에는 어김없이 자동차 열쇠가 들려져 있다. 너무 자연스러워 오히려 자동차 열쇠를 들지 않은 맨손이 어색하다. 

걷는다는 행위가 이제는 그 행위를 위한 목적이 있어야만 행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더 이상 걷기는 일상 속의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다.

브르통은 자동차 때문에 고속도로와 국도가 생겼기 때문에 인간은 발이라는 신체의 자유를 빼앗겼고 명상과 사유 혹은 치유의 걷기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걷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와 만남의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걷는 여행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은 두 발에게 다시금 자유를 선물하고 싶다는 인간 내면의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 

브르통은 저서 ‘걷기예찬’(다비드 르 브르통 저·현대문학·2002년)을 통해서 사람이 걷는다는 일이 얼마나 큰 기쁨이며, 행복한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걷는 행위, 혹은 걷기를 통한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고,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내려 갈 때마다 신발끈을 고쳐 매고, 물 한병 손에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야 할 것만 같다. 자연의 어떤 상황이든 걷기는 그 나름의 깨달음과 기쁨을 안겨준다. 

여행의 묘미는 걷는 중에 발생하는 우연한 만남과 경험일 것이며 그래서 많은 여행자는 그 경험을 잊지 못해 다시 떠나는 것임을 브르통은 장 자크 루소와 칸잔스키 등의 글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괜히 내 다리에게, 내 발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걸어야겠다. 거창한 여행계획을 세우고 미지의 세계로 색다른 경험을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을을, 집 근처 산책길을 걸으며 두발에게는 자유를 선물하고 내면의 나를 만날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임을 브르통이 이 책에서 속삭여준다.

볼에 닿는 차가운 바람 속에 향긋한 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나무들도 서서히 연둣빛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발에게도 새봄을 맞아 걷는 자유를 선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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