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외출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2.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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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참 오랜만에 시외버스에 오른다. 통근하며 오랜 직장생활을 했던 나에게 버스는 친근한 고향처럼 정겨움을 더하는 교통수단이었다. 

이른 아침 터미널은 활기가 넘친다. 해외 나들이로 긴 손잡이의 여행 가방을 끌고 가는 모습에 눈길이 머문다. 그들의 설렘과는 다르게 내겐 무거운 외출이다.

새벽예배를 다녀왔을 때 문자메시지가 온다. 얼른 열어보았다. 안산에 사는 초임지의 제자였다. 너무 이른 새벽 소식이라 마음이 불안했다. 제자의 친정어머니 소천 소식이다. 부지런히 아침밥을 지어먹고 바쁘게 출발했다. 

그녀는 40여 년 전 초임지에서 방과후 문예반에서 지도하던 초등학생이었다. 그녀와 더 인연이 깊었던 것은 그의 동생 둘을 담임해 오랫동안 인연의 끈이 이어져 왔었다. 붙임성이 있어 내가 잠시 아이들 양육 관계로 사표를 내고 가정에 있을 때에도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가끔씩 전화를 걸어 본인의 소재를 알려주고 친구들의 소식도 전해 주었다. 지금은 50이 넘어 함께 사회생활을 하는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달리는 시외버스의 차창으로 가로수와 먼 산의 겨울나무들이 빠르게 버스 뒤로 사라진다. 마치 너무 빠른 세월을 보는 것 같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여유로운 창문 밖의 풍광에 마음 한 곳에 연민이 생긴다. 젊은 시절 많은 시간을 오갔던 애틋함도 묻어난다. 그때는 손안에 들어오는 문고판을 자주 탐독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안치실을 확인하니 담임했던 그들의 이름이 눈에 안긴다. 

빈소엔 중년의 상주들과 그의 자녀인 듯한 젊은이들이 문상객을 맞는다. 몇십 년 만에 제자들을 보는 것이어서 잠시 상황을 살폈다. 

난 맏이인 그녀를 찾았다. 서로 끌어안고 눈물부터 쏟는다. 빈소엔 영정사진 속에 고인이 봄꽃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눈물을 닦고 담임하였던 그의 동생 둘을 확인하고 40년 만의 해후를 빈소에서 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해서….” 말끝을 흐리는 제자들의 눈가에 이슬이 촉촉이 맺힌다. 

오랜만의 만남이 장례식장이란 곳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열살 되기 전에 함께 생활하던 아이들이라 더 애틋했다. 그들도 이미 다 부모가 되고 삶을 함께 살지 않는가. 

이젠 교사와 학생이 아닌 서로 인생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그런 관계가 되었다.

그들과 한 상에서 오찬을 나누며 긴 시간을 되돌려 본다. 머릿속에 아직 남은 그 친구들의 소식과 사는 이야기로 오랜만의 정을 나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얼굴엔 어릴 때의 모습이 더 진하게 나타난다. 생글거리던 막내와 늘 무뚝뚝했던 셋째. 살아있으니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인가 보다.

제자는 2년 전에 남편이 떠난 이야기를 나를 배웅하며 들려준다. 손에서 따뜻한 체온이 전해진다. 그 상처가 조금 안정이 되어 가는데 어머니의 소식은 그녀를 더 힘겹게 하고 있었다. 차마 그녀의 애달픈 이야기를 듣기 민망했다.

내 모습을 본다. 난 그녀처럼 스스럼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문자를 받고 내 발길을 끌어낸 그녀의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내가 지인들에게 슬픈 소식을 망설임 없이 전하여 달려올 사람이 나에게는 몇이나 있을지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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