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야 힘이 생긴다
힘을 빼야 힘이 생긴다
  • 김 희 숙<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02.05 19: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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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
김 희 숙<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다. 케익을 들고 약속시간보다 일찍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가 바쁘게 어디론가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전화를 걸었다. 왜 이리 일찍 왔냐며 그녀가 차를 돌려 다시 우리 쪽으로 온다. 회를 주문해 놓았는데 찾으러 가는 중이란다. 집 키를 건네고 그녀는 다시 횟집으로 향한다.

주인 없는 집 문을 조심스레 열어 본다. 햇빛이 먼저 거실에 발을 들이고 주인처럼 해사하게 웃고 있다. 집안 여기저기를 눈동자를 굴리며 스캔한다. 내 사진이 책장에 있다. 푸르렀던 시절에 다정하게 함께 찍은 사진이 어제처럼 웃고 있다.

햇살을 따라 창가에 고개를 돌렸다. 창가에는 꽃은 다지고 잎만 무성한 카랑코에, 제라늄, 사랑초, 파키라가 초록빛 시선을 던지고 있다.

살림을 잘하는 그녀는 식물도 잘 키운다. 식탁을 본다. 식탁 유리 안쪽에 ‘내 시간은 내가 관리한다!’라는 문구와 함께 주간계획표가 있다.

월요일은 영화, 화요일은 수영, 수요일은 등산, 목요일은 독서, 금요일은 요가! 나름대로 계획하여 시간을 알차게 가꾸며 사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녀에게 가끔 농담처럼 말한다. “넌 전생에 우주를 구했나 보다. 놀고 먹으면서 사니 말이야. 나도 이생에 나라를 구해서 내생에는 편히 살고 싶다.” 그녀는 그저 웃는다.

그 시절 폭포처럼 쏟아지는 캠퍼스의 낙엽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그녀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그녀는 그 꿈을 이루고 잔잔히 살고 있다.

그녀가 또각거리며 돌아왔다. 컴퓨터를 열더니 유키 구라모토의 Lake Louise를 튼다. 음악 속에서 상을 차리는 그녀의 모습이 평온해 보인다. 케익을 자르고 회를 먹으며 우리는 일상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요즘 수영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이제 물에 뜬단다. 힘을 빼니까 물에 자연스럽게 뜨더란다. 살면서 힘을 빼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운동을 무척 즐긴다. 골프를 칠 때도 힘을 빼는데 10년이 걸렸단다. 탁구를 할 때도 힘을 빼지 않아 공이 마음대로 요리되지 않았다 한다. 이제 수영을 하는 데 힘 빼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녀는 힘을 주어 말한다. ‘힘을 빼야 비로소 새로운 힘이 생긴다고!’

그녀의 말을 곰곰 생각해 본다. 나는 힘을 얼마만큼 빼고 살고 있는가? 의도적으로 힘을 줄때도 많았다. “ 난 우아한 사람이야~ 난 똑똑해~ 난 잘났어~.”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난 우아하지도 똑똑하지도 잘나지도 못했다. 그렇게 힘을 주었던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작아진다. 목에 힘을 빼고 자신을 낮출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더불어 살아가는 힘이 생기는 것이리라.

그녀의 집을 나오며 생각에 젖는다. 힘을 빼고 힘 있게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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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2015-03-30 05:33:49
힘주어 연습하는 과정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힘을 뺄 수가 없죠. 작아지지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