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배 시인의 문학 칼럼
박화배 시인의 문학 칼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27 0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길도 가는 길 (윤선도 문학 산실 세연정)
같은 배로 온 사람들은 벌써 세연정 정원 주위를 한바퀴 휘 둘러보고 무리지어 가버리고 다시 고요해진 연못가엔 나 혼자 고산 윤선도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럴 즈음에 자신의 재산까지 털어서 고산 사적지를 보호하려는 그곳의 향토 사학자 강종철이라는 분을 만나게 되었고, 부용동 일대를 같이 돌아다니며 많은 설명을 듣고 나니 국문학쪽으로만 국한시켜 생각해 왔던 내 사고의 폭을 수정해야만 했다. 또한 그 향토사학자의 말을 듣고서 고산의 시(詩)에 나타난 것처럼 자연 속에 은거하여 자연을 벗삼아 생활하고 즐기며 글만 쓴 은둔자로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 마치 이곳 보길도가 윤 고산의 왕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의 풍류를 즐긴 것에 감탄을 연발할 뿐이었다.

한국의 고(古)정원을 신선정원, 정토정원, 자연주의정원으로 구분한다면 자연주의 정원인 소쇄원과는 달리, 윤 고산이 만든 유적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세연정 정원은 신선정원에 속한다고 한다. 이런걸 봐서도 그가 그 당시 썩어빠진 당파싸움의 속세에서 벗어나 근심 없고, 아름다운 곳에서 신선처럼 살기를 얼마나 원했는가를 추측해 볼 수가 있다.

그는 세연정 정원 연못에 그의 성품을 반영이라도 하는 듯 맑고 신선하고 간결하게 보이는 수련을 가득 심어놓고 그 넓은 연못의 군데군데에 크고 작은 바위를 옮겨다 놓아 마치 섬인양 만들어 놓고 그곳엔 신선이 산다고 하며 그 섬 사이를 소방배(삿대로 젓는)를 띄워서 타고 다니며 자신도 신선인양 즐겼다고 한다.

이 세연정 정원은 구조면에서 볼 때 보길도에 소재한 고산의 정원 중 가장 인공적 조형처리가 잘 행해진 직선적이며 대칭적 기하학적 정원으로, 예를 든다면 동대와 서대를 들 수가 있겠다. 이 동대와 서대는 인공축대로서 동대는 평형축이고 서대는 나선형축(螺旋形築)이다. 이것들을 이렇게 대칭적으로 만든 것과 비례해서 동대에서는 농악을 연주케 하였고, 서대에서는 4죽관현을 연주케 하였으며, 연못 수면 위에 축조된 군무지에는 선무자(여러 무희 중에서 으뜸 무희로 뽑힌 자)가 춤을 추고 윤 고산은 그 군무지 옆 유도암에 앉아 춤추는 무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잔잔한 연못물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여색을 즐기는데 있어서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것이 대부분이겠으나 윤 고산은 음악과 자연의 풍치가 어우러져 수면에 비치는 가운데 무희의 춤추는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봄으로써 물에 어른거리며 비치는 무희의 치맛속의 박속같은 흰 속살을 춤과 함께 엿보았다고 한다. 또한 술을 마시며 시를 읊조리다간 옆에 있는 무희에게 연못 속에 들어가 수련을 따게 하여 여자들이 치마를 걷어 올리면 하얗게 드러나는 속살을 보며 풍류를 즐기기도 하였으니 신선이긴 신선이되 참으로 한량 같은 신선이 아니었는가 싶다.

연못 하면 주위의 풍치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맑은 물의 수량일 것이다. 이 세연정 연못은 그런 면에서 본다면 더욱 훌륭한 연못일 것이다. 윤 고산은 이 못의 일정한 수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5개의 물이 들어오고 3개의 물이 빠지게 하는 오입삼출법을 택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이론처럼 쉽게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오랜 기간의 경험에 의하여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가 있겠다. 또한 이 연못 하구엔 굴뚝다리라는 것이 있는데, 보통다리는 받침대를 세우고 그 위에 디딤돌을 놓는 것이 예사인데 이 다리는 요철(凹凸)식으로 삼면이 모두 넓적한 바위로 규칙적이게 놓여져 있고 직선이 아니라 약 15도 가량 굽어져 놓여 있다. 이렇게 굽은 것은 홍수가 날 경우 직선이라면 쓸려 내려갈 우려가 있겠으나, 그것을 고려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건재하다는 것이다. 이 다리의 기능은 연못의 수량 확보를 위해서 놓았으며, 또한 연못 건너에 있는 정자에 건너다니기 위해 놓았다고 하는데, 그 다리 내부엔 아이들이 들어갈 수가 있을 만큼의 통로가 있고, 그 통로를 만들 때 바다의 굴 껍질을 가루로 만들어 고령토와 섞어 청주(酒)로 반죽하여 만들었다니 참으로 이 작은 공사에도 얼마나 지극한 정성과 성실이 스며들어 있는지 모르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