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그리고 흥남철수작전
국제시장, 그리고 흥남철수작전
  • 박상일 <역사학자·청주문화원부원장>
  • 승인 2015.02.0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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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아직도 극장가는 ‘국제시장’이 대세다. 누적 관람인원이 1200만을 뛰어넘으며 역대 흥행기록 상위에 성큼 올라섰다고 한다. 전후의 어려운 시기를 살아온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고, 가족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옆자리의 아내는 지난 연말에 본 ‘님아~’에 이어 이번에도 눈물깨나 흘린 눈치다. 묵묵히 보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당신은 감성도 없다고 핀잔을 주지만 실은 나도 어두움에 숨어 눈을 붉히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가장 가슴을 졸이고 목이 메었던 장면은 아비규환의 흥남철수가 아닐 수 없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라는 노래 가사를 실감하기에 충분하였다.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뛰어들면서 전세가 크게 역전되자 국군과 유엔군은 평양을 포기하고 남으로 후퇴하게 된다. 서부전선의 제8군은 육로로 후퇴할 수 있었지만 동부전선 장진호 방면으로 북진한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은 원산지역이 중공군 수중에 들어가는 바람에 고립무원이 되어 해상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때 흥남에는 영하 27도의 추위 속에서 10만에 이르는 피난민이 운집하였고 국군과 미군만도 10만5000명이나 되었다. 1950년 12월 10일 유엔군은 12일부터 23일까지 군함과 상선 200여척을 동원하여 흥남철수작전을 단행한다. 미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은 600만톤이나 되는 무기와 장비를 수송해야하기 때문에 피난민 수송이 어렵다고 하였으나 통역관 겸 민사고문인 현봉학(玄鳳學) 선생의 설득으로 수송선에 피난민 9만8000명을 태우게 된다.

영화 속에 피난민이 탄 상선은 메러디스 빅토리호이다. 이 배의 정원은 60명이었고 이미 선원 47명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는 13명만 더 태울 수 있었지만 현봉학 선생의 간청으로 레너드 P.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 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피난민을 최대한 태우라고 명령했다. 피난민들도 자신의 짐을 버리고 승선해 모두 1만4000명이 탈 수 있었다. 부두에 버린 폭약과 차량 등 군사장비는 승선이 끝난 후 해군 함대와 폭격기가 집중사격을 가하여 폭파시켰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28시간 동안 항해해서 12월 24일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이미 피난민으로 가득 찼다는 이유로 입항이 거절되어 할 수 없이 50마일을 더 항해해서 크리스마스인 25일 거제도 장승포항에 피난민을 내려놓았다. 항해 도중 생필품이 모두 부족했고 적이 공격하는 와중이었지만 희생자는 한명도 없었고 아기 5명이 태어났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71년 퇴역한 후 1993년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에 고철로 팔렸다. 미국 교통부는 이 배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출을 한 기적의 배’라고 선포했으며 2004년엔 기네스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조를 한 배’로 기록됐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는 이 배의 모형이 있으며 ‘마리너스의 기적의 배’는 그 일생을 적은 책이다.

현봉학 선생은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의사로서 6·25 참전 후 미국 펜실베니아 등 여러 의대 교수로 재직하였고 2007년에 별세하였다. 2014년 12월 국가보훈처의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다.

한편 흥남철수작전을 진두지휘한 제1군단장 김백일 장군은 맨 먼저 38선을 돌파하여 쾌속으로 압록강까지 북진하였고 흥남철수 후 중공군을 물리치고 재북상에 앞장서다가 비행기 사고로 순직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항일독립군 토벌을 주목적으로 창설된 간도특설대의 핵심 간부출신이라는 이유로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동상이 수난을 당하고 있고 그의 이름을 딴 광주시의 백일로, 백일초등학교, 백일공원, 백일산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거세다. 역사, 참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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