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갱이
올갱이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5.02.0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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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지금 의사하는 친구 이야기다. 해부학 시간에 ‘올갱이의 일생’에 대해서 발표를 했단다. 긴 시간의 발표를 끝냈는데 교수가 묻더란다. ‘그런데 올갱이가 뭔가?’

올갱이하면 다 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표기법도 여러 가지다. 올갱이라고도 하지만 ‘올뱅이’라고도 하는 곳도 있다. 유학시절 한국의 각 지방 사람들과 올갱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각양각색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경상도 산골 출신의 주장이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유학 오는 바람에 처음 서울을 지나쳐봤다는 경상도 사나이였는데-그에게 서울은 곧 김포공항이었다- 올갱이가 뭐냐면서 ‘고둥’이라고 우겼던 것이 기억난다.

올갱이는 표준어로는 다슬기라고 한다. 민물에 사는 작은 갑각류를 가리킨다. 논에도 있었지만 요즘은 보기 힘들고 주로 하천에 많다. 바위에 붙어 이끼를 먹고사는데 이놈들을 잡아 된장국을 끓이면 맛이 좋아 전래음식에 애용되었다.

어렸을 때 이놈들을 삶아 옷핀으로 뱅그르 빼먹던 기억이 새롭다. 어른들은 잘 빼먹는데, 나는 자꾸 끊어져 속상했던 일이 떠오른다. 결론은 옷핀이 아니라 올갱이를 잡고 있는 왼손에 있었다. 그런데 고정관점이 있어 왼손은 잡고 오른손으로 빼낸다고 여기는 데 문제가 있었다. 마치 사과를 깎는 것을 보면 칼 쥔 손으로 깎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보라, 사과를 잡은 손을 얼마나 잘 돌리느냐에 따라 예쁘게 깎인다. 올갱이도 그랬다.

공부를 하면서 국어학 책에서 다슬기에 대한 방언지도를 본 적이 있다. 전국지도를 그려놓고 올갱이, 올뱅이, 다슬기, 고둥 등등의 용법을 표시해놓은 것이다. 그전만 하더라도 ‘올갱이’는 옳고 ‘올뱅이’는 틀린 줄 알았다. 둘 다 표준어가 아닌데도 말이다. 올갱이가 올뱅이를 욕하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었다. 물론 우리 동네의 표준어라면 올뱅이가 아니고 올갱이였다.

국문학에서는 ‘방언학’도 학문이다. 얼마 전 우리 쪽 학회를 갔는데, 건너편 강당에서는 더 큰 규모로 방언학회가 열리고 있었다. 재밌는 공부도 참 많다. 책자를 얻어 우리 국문과 교수에게 전달해 주었다.

‘순두부’인지, ‘숨두부’인지도 늘 문제다. 대전 쪽에서는 숨을 쉰다고 숨두부라고 자랑스럽게 상호에 붙여놓았다. ‘밤 고개’인지, ‘반 고개’인지도 다툼이다. 밤 고개는 밤나무가 있어 그렇다고 주장하고, 반 고개는 고개가 반쪽짜리 나지막해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반(半)이나 밤(栗)의 논쟁은 지명의 문제라서 큰 문제로 번지기도 한다. 그 정점에는 시청의 민원처리반이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어린 시절 ‘새뱅이’라는 별명을 지닌 동네 형이 있었다. 그 형은 자기를 새뱅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분노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놀려댔고, 그 결과는 거의 주먹질에 가까웠다. 어떤 코믹 영화에서 ‘닭’(치킨)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분노조절이 안 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 새뱅이 형을 떠올렸다.

그런데 새뱅이의 진정한 뜻을 안 것은 다 커서였다. 새뱅이는 민물에 사는 작은 새우를, 새우는 바닷새우를 우리 동네에서는 뜻했던 것이었다. 얼마 전 진도가 고향인 분에게 새뱅이 매운탕을 대접하면서 ‘새뱅이를 아느냐?’라고 물었더니 ‘뭔 소리냐’면서 우리는 바다 새우밖에 모른단다. 오늘 점심 나는 좋은 사람과 단맛 나는 새뱅이 매운탕을 먹었다. 그 여흥이 쉬 가시지 않는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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