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다녀오셨습니까
군대 다녀오셨습니까
  • 최 준 <시인>
  • 승인 2015.02.0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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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최 준 <시인>

돌아보니 삼십년전이다. 지금이 정초이니 그때 나는 강원도 양구에서 국방색 군복을 입고 있었다. 이등병 졸병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고, 고달팠다. 사흘도리로 눈이 내려 날도 밝기 전에 군용트럭을 타고 제설작업에 투입됐다. 하루에 세번 제설작업을 했던 적도 있었다. 천막 덮개가 있었지만 트럭은 내부가 아닌 외부였다. 어둠보다 더 어두운 마음들을 끌어안고 병사들은 아무도 말이 없었다.

적요에 잠긴 부대 밖 마을은 딴 세상이었다. 아무 집에라도 들어가 벌러덩 드러눕고 싶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내무반 동료들의 고향은 제각각이었다. 부산도 있었고 진도도 있었다. 국토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복무를 하기 위해 모인 장병들이었다. 저녁 휴식 시간이면 온갖 사투리들이 내무반 침상 사이를 오갔다. 입대하기 전에 했던 일도 모두가 다 제각각이었다.

이따금씩 나는 생각했다. 이 젊은이들의 혹독한 시간이 언젠가 사회로 돌아가 이어질 이들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을까. 사내는 군에 다녀와야 온전한 사내가 된다는 말도 있는데 정말 그럴까. 애국심이라는 게 무엇일까. 나라가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바라기 전에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먼저 생각하라 했지만 동료들을 볼 때마다 들었던 안쓰러움의 감정이 군 생활을 마칠 때까지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뉴스 시간이면 이런저런 군대 소식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제일로 안타까운 건 사고 소식이다. 다 키운 자식을 군에서 잃은 부모님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군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가 덧대어지고 나름의 해결 방안들이 제시되지만, 글쎄다. 지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이 나라에서 군 문제는 통일만큼이나 복잡한 난제가 아닌가.

총리 내정자의 아들이 군대 면제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가 시끄럽다. 이른바 돈 없고 백 없는 이들의 자식들만 군에 간다는 세간의 자조 섞인 말들도 떠오른다. 총리 내정자 아들의 군 면제가 정당한 것이었든 아니든 지금 우리 사회의 위화감 한축에는 분명히 군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자식들과 일반 국민들의 자식들이 군대에 가는 비율이 이렇게도 차이가 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여러말 할 것도 없다. 올바른 사회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횡행하는 작금의 사회는 분명 잘못되어 있다. 지금 이 한겨울에도 수많은 이 땅의 아들들이 나라를 지키느라 인생의 황금 같은 시간을 군에서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 자부심을 가지라는 추상적인 격려보다 더 필요한 건 그들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사회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자세다. 분명히 잘못 되었는데, 그들은 정말로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만일 알고도 방치하고 있는 거라면 명백한 직무유기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절반에 가까운 시기를 군 출신 대통령이 통치한 나라에서 아직껏 군 문제 하나도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통령이 여러번 힘줘 약속하신 대로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가 오면 이런 문제도 다 해결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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