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을 위한 엠바고가 아니다
경찰을 위한 엠바고가 아니다
  • 하성진 기자
  • 승인 2015.02.0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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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청주 흥덕경찰서는 지난달 29일 오후 5시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망사고에 대한 긴급브리핑을 자처했다. 뒤늦게 확보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용의차량의 종류는 애초 특정했던 BMW가 아니라는 게 브리핑의 골자였다.

30여명의 기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경찰은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를 전제로 용의차량이 윈스톰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차종이 알려지면 피의자 허모씨(38)가 자칫 심적 압박감을 못 이겨 자살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결과부터 말하면 수용여부를 논하기도 전에 엠바고는 깨졌다.

아동·여성 납치 등 보도로 피해자의 생명이 위협받거나 아무도 알지 못했던 사실을 경찰이 먼저 언론에 던져주는 모양새였다면 응당 엠바고를 지켜주는 게 언론의 도리이고 양심이다. 하지만 과연 이날 엠바고가 허씨의 신병 우려에 따른 순수성이 담보된 것인지 경찰에 묻고 싶다.

경찰은 브리핑을 열기전 천안의 자동차부품대리점을 통해 피의자의 부품구매 사실과 함께 신원까지 확인했다. 카드사로부터 이날 오후 3시쯤 개인정보제공 사실을 전해 들은 허씨는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점을 알아차렸다. 경찰 내부에서는 검거를 목전에 둔 만큼 이날 브리핑을 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피의자의 자살 우려를 이유로 요청한 엠바고가 결국 검거를 위한 ‘시간 벌이용’이었다는 대목이다.

부실한 초동수사로 경찰이 맥을 못 춘다는 비판이 예견된 상황에서 허씨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워 체면치레 한번 해보려 했던 것이었을까. 경찰에 던지는 물음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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