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질주
전력질주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5.01.2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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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이라고 해서 그리 거창한 여행을 하고 온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함께 홀가분하게 일상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음에 의미를 두었다. 마늘 정식을 꼭 한번 맛보고 싶어 하는 두 아이의 소망을 고려해서 선택한 여행지는 육 쪽 마늘로 유명한 단양이다. 

도담삼봉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두 딸은 도담삼봉의 풍광보다는 강가에 서 있는 말을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지른다. 말 가까이 다가가니 아저씨 한 분이 말을 어루만지며 말과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태워 주기도 한다고 했다. 지난해 왔을 때 분명 보지 못했는데 여러 해가 되었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덩치가 작은 것도 아니요, 충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 한 생김새였다. 지난해에도 강가 언덕에 우뚝 서 있거나 누군가를 등위에 태우고 걷고 있었을 터인데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 더 이상스럽다. 두 딸은 어느새 말의 이름과 살아온 이력까지 알아내어 알려준다.

말의 이름은 ‘전력질주’였다. 한때 잘 나가던 경주마였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의 함성을 들으며 골인지점을 향해 오로지 앞만 보며 달리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노쇠해지고 더 이상 경주마로서 사람들의 함성을 들을 수 없게 되자 관광지인 이곳까지 흘러들어와 오가는 사람들에게 등도 내어주고 같이 사진모델도 되어주게 된 것이다. 

말의 눈을 바라보았다. 왠지 슬퍼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평화로워 보이기도 했다. “전력질주로 사는 동안 수고했어.” 말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잔등을 어루만져 주는데 엄마표정이 슬퍼 보인다며 작은아이가 한마디 한다. 아이 말대로 바라볼 수록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사람들의 우승에 대한 염원을 가득 담은 마음으로 지었을 전력질주란 이름도 가슴에 무게를 더했다. 어쩌면 나는 경주마가 살아낸 지나온 날들이 남편이 살아낸 시간과 앞만 보며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말을 타는 큰아이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남편을 보았다. 남편도 그랬었다. 오직 목표를 위해 앞만 보고 전력 질주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일은 늘 조마조마했다. 그때는 그 길만이 살길이라 생각했었는지 잠깐의 여유도 사치라 생각했다. 이렇게 가족 여행을 다니게 되기까지는 남편이 직진하고 전력 질주하며 살아온 덕분이다. 하지만, 잃은 것 또한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가끔 남편은 말한다. 앞만 보며 달려온 시간이 결코 후회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졌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어느 사이 작은아이가 말을 타고 강가를 여유롭게 걷고 있다. 빠르게만 달리던 경주마 전력질주가 아이에게 등을 내주고 느릿느릿 걷고 있다. 그 모습이 도담삼봉의 풍광과 잘 어우러져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목표를 향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경주마 ‘전력질주’와 강가의 풍경과 두 아이 모습을 번갈아 흐뭇하게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이 겹쳐진다. 여유로워 보이는 두 모습에서 그간 살아온 날들의 흔적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작고 소소한 것조차도 의미가 되어 세상살이의 여백을 만들 수 있는 이 시간, 이래서 여행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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