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이별 앞에서
만남과 이별 앞에서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5.01.2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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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인생이란 만남과 이별의 쌍무지개이다. 인생은 만남이라는 무지개와 이별이라는 무지개로 뜬다. 때론 번갈아 뜨기도 하고 동시에 떴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인간은 그렇게 만남과 이별을 주고받으며 살다가 짧은 생을 마감한다. 마치 어느 날 신기루처럼 떴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사람들은 모두 부모의 몸을 빌려 세상에 나와 가족의 일원이 되고 사회구성원이 되어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하며 산다. 

어찌 만나고 이별함이 사람에게만 있으랴.

자연환경과 생성물질, 가치관과 이념, 직업과 취미 등도 수없는 만남과 이별을 한다.

부자 부모를 만나면 유복한 생활을 하게 되고 가난한 부모를 만나면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부자 부모를 두었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며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란다고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가난한 부모를 두었다 하더라도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멘토를 만나고 좋은 일터를 만나고 좋은 자연환경을 만나면 삶에 활력이 생기고 행복해 진다.

아무리 돈 많은 부모를 두었다 하더라도 나쁜 친구를 만나고 나쁜 선배를 만나고 나쁜 일터를 만나고 나쁜 자연환경을 만나면 삶이 피폐해지고 불행해 진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와도 이별해야 하고 죽자 살자 사랑했던 연인과도 이별의 순간이 온다. 만남은 의도된 것 보다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이고 우연한 만남이 많다. 이별은 천재지변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생이별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당사자들의 의지와 제도 등에 의해 예고된 이별을 한다. 어떤 이는 호연으로 만났다가 원수가 되어 헤어지고 어떤 이는 악연으로 만났다가 호연이 되어 떠나기도 한다.

불가에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이 있다. 만난 자와 반드시 이별하니 세상사 무상함을 이른다.

세상에 만남 없는 이별 없고 이별 없는 만남은 없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서로 보듬고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떠날 때 아쉬움을 주는 향기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떠나서 속이 후련하다고 만세를 부르게 하는 고약한 사람도 있다. 떠날 때 아쉬움을 주는 사람, 떠난 후에 빈자리가 커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가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별은 슬픔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동반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별 앞에서 의연해야 한다. 이별도 연습이 필요하다.

다니는 성당에 주임신부와 보좌신부가 동시에 전출명령이 났다.

이별에 서툰 마음여린 보좌신부는 정든 신자들과 헤어짐이 안타까워 강론 중에 여러 차례 눈물을 훔쳐 신자들의 마음을 짠하게 했는데 이별에 익숙한 노련한 주임신부는 이별의 회한을 정제하며 강론을 의연하게 마쳐 신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절제되고 숙성된 이별은 여운이 있고 아름답다. 이처럼 이별에도 연륜과 품격이 존재한다.

진보주의자가 어느 날 보수주의자로 변신하고 보수주의자가 어느 날 진보진영에 서기도 한다. 시골이 싫어 도시로 떠난 자가 도시가 싫어 귀촌을 하고 살던 집도 학교도 직장도 취미생활도 수시로 바꾸며 사는 세상이다. 쉽게 만나고 쉽게 이별하는 세태지만 떠날 때를 알고 미련 없이 떠나는 이도, 떠나는 이를 곱게 보내주는 이도 모두 아름답다.

있을 때 잘하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옳은 말이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세상사니 정말 있을 때 잘해야 한다.

그대여, 우리 있을 때 잘하자. 한 번뿐인 유한한 삶, 고운 쌍무지개를 그리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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