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風景) 같은
풍경(風景) 같은
  • 임정숙 <수필가·세계직지문화협회 과장>
  • 승인 2015.01.2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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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정숙 <수필가·세계직지문화협회 과장>

갑작스럽게 뭉친, 세 여자가 여행길에 나섰다. 오래전 미국 이민을 떠났던 언니 부부가 돌아온 지 몇 해 되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산 세월 탓도 있지만 언니, 손아래 올케와 2박 3일 짐을 싣고 떠난 여행은 처음이었다. 

어쩌다 집안일로 왕래하며 보는 얼굴과는 색다른 설렘이 있었다. 무엇보다 ‘시’ 자 들어간 시금치도 먹지 말라는 시집 여자들 틈에 낀 올케의 용기가 기특했다. 

여수에 어둠이 내릴 무렵 ‘언덕 위에 하얀 집’이라고도 불리 우는 카페에 도착했다. 다소 놀라웠다. 정원에서 자라는 온갖 야생화를 감상하며, 훤히 트인 바다와 다도해 섬 사이로 지는 일몰 절경의 황홀함을 조망하기 좋은 ‘축복의 카페’라 한다니. 게다가 소박한 주인의 향기에도 취한다는데, 우아한 그 여인은 알고 보니 어릴 적 보았던 언니의 절친한 여고 친구였다. 

특별한 친분 덕에 깊은 밤, 아늑하고 편안한 카페에서 싱싱한 회와 와인 파티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때마침 창밖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펑펑 쏟아지던 흰 눈은 금방 동화 속의 설국을 연상케 했다. 글을 쓰면서 흠모했던 박완서 작가, 법정 스님을 비롯하여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많은 문인과 예술인들도 이곳을 벗 삼아 찾았다 하니 미처 몰랐던 명소를 찾은 기쁨이 배로 느는 듯하다. 

친구인 두 언니가 정담을 나누는 동안, 살갑게 구는 올케와 난 고풍스러운 카페 공간을 배경으로 괜찮은 독사진 몇 장을 건질 셈이었다. 참 야릇한 건, 카메라 렌즈 속에서 상대가 어느 한순간부터 홀로인 자유로운 영혼의 한 여자로 보였다는 거다. 가깝다 하지만 소원해지기 쉬웠던 가족이란 굴레에서 먼저 다독이며 손을 내민 적이 얼마나 되던지. 괜한 미안함이 앞서는 건 뭔지 나이 들며 오는 서로에 대한 연민인가. 

숙소로 정한 여수에서의 호텔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착각이 들도록 바다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지어진 건물이었다. 탄성과 함께 행운은 이어졌다. 밤바다에 눈이 새털처럼 내리는 광경을 세 여자가 하염없이 볼 수 있었다는 건, 아마도 우리의 첫 동행을 누군가 축하하는 선물일 거란 언니 혼잣말에 모두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여수에서 가까운 순천만의 드넓은 갈대밭은 세 여자를 더 끈끈하게 밀착시켰다. 눈발이 날리다 멈춘 파란 하늘을 이고 걷는 낭만은 그저 말없이 바라보기만하여도 되는 너른 어머니 품 같았다. 사람과의 인색함도 옹졸함도 포근하게 다스릴 줄 아는 멀리 펼쳐진 갈대의 모습들은 깊은 내공의 부드러움으로 눈에 선하다.

어떠한 해외여행보다 유달리 더 좋았단 언니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시기적절하게 가는 곳마다 가장 멋진 풍경을 연출하며 뿌려주던 하얀 눈과 여수 겨울 바다, 광활한 갈대밭, 다시 가고 싶은 카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내내 머물듯 하다.

여행 내내 떠나지 않았던 먹먹함이 있었다. 지금까지 갖지 못했던 빈 시간에 대한 아쉬움일 수도 있지만, 언니와 동생, 시누이와 올케라는 관계에서 오는 새로운 결속력의 뿌듯함이 더 컸던 건 아닐까. 

‘형님, 사진 보며 올겨울 따스하게 보낼 듯해요.’ 올케가 보낸 휴대폰 문자로 보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거다. 

늘 누군가에게 그리운 풍경으로만 남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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