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내리다
뿌리내리다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5.01.2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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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아프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끙끙대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어깨로부터 팔, 등으로 내려와 발끝으로 가는 손길에서 한 군데도 편안하게 넘어가질 않는다. 온몸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 

그녀는 처음 마사지를 받고 나면 사흘은 아프지만 두 번째라 덜 아플 것이라 했다. 

소소한 이야기 끝에 살아온 얘기를 풀어 놓는다. 두 번의 결혼실패로 아버지가 다른 남매가 중국의 언니 집에 맡겨져 있다고 한다. 나는 조선족이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한국에서 마사지하는 직업으로 5년째 살고 있단다. 

작년 한 해는 참으로 곡절 많게 살았다. 시부모님의 병원생활도 힘들었지만 더욱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친정아버지께 내려진 암 선고였다. 

남겨진 5~6개월의 유한한 삶을 위해 다른 일은 모두 뒤로 미루고 오로지 아버지만 생각하고 아버지를 위한 일에만 매달렸다.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셨을 때 나도 함께 캄캄한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한동안 슬픔은 슬픔을 낳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나락에서 한 줄기 빛을 보고 겨우 일어섰을 때 아픔은 마음에서 몸으로 번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이 걸렸는지 얼마 전에 둘째올케가 전신 마사지를 받게 해줬었다. 그때는 더 아팠었다. 괜히 마사지를 받는 것은 아닌가 하고 후회도 했다. 그녀의 말대로 처음엔 사흘 동안 성한 곳 없이 아팠으나 나흘째부터는 몸이 가벼워졌다. 그러자 작은딸이 티켓을 마련해준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몸을 맡기면서 그녀의 과거사를 듣는다. 대책 없는 오지랖이 다른 아픔의 손을 잡는다. 

스물셋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으나 스물다섯에 남편이 아들하나 남기고 사고로 세상을 떠났단다. 

스물아홉에 두 번째 결혼에서 딸 하나를 얻었으나 남편은 생활비도 주지 않으면서 데리고 온 아들을 몹시 구박하더란다. 그렇게 10년 넘게 견뎠다 했다. 

몇 해 전부터 남편이 먼저 한국으로 와서 일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 연락도 하지 않고 아이 학자금도 주지 않더란다. 

결국 생활고로 그녀도 한국으로 들어와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남매의 학자금과 생활비를 보내고 있단다. 이달 말이면 아들도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것이란다. 

살던 곳보다 생활환경이 나은 곳이라 해도 다시 뿌리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하물며 낯선 곳에서는 오죽하랴. 그녀가 먼 곳에서 날아와 앉은 자리는 척박하다. 자식들과 이곳에 깊은 뿌리를 내리려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은 애처롭기도 하다. 

그녀의 아픔에 손을 내밀어 놓고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음에 미안하다. 주기적으로 마사지를 받는다면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이러한 일에 익숙하지 않으니 그도 장담할 수 없다. 경제적인 면도 발목을 잡는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일을 마치자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넨다. 힘든 내색 없이 표정이 밝다. 그녀의 꺾였던 삶의 가지 끝에서 다시 푸릇한 이파리를 돋아나게 하려면 뿌리내리는데 한 줌의 거름이라도 얹어야 미안함이 덜하겠다. 가끔 와야 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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