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말이 많은 까닭
여자가 말이 많은 까닭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5.01.2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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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여자가 말이 많은 까닭을 말하겠다면 무엇보다도 성차별주의적 발언으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분명 아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말이 많은가?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으니 ‘여자가 남자보다 말이 많다’는 주장조차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나의 말은 심심풀이 정도로만 생각해도 좋겠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여자가 남자보다 말이 많다고 믿고 있다. ‘수다’라는 용어가 여성용인 것으로 보아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여자보다 말 많은 남자도 내 주위에서는 많이 있으니 쉽게 일반화할 일은 아니다. 비과학적 신념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여성이 말이 많은 이유에 대해 어떤 민속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성은 언어를 전승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 말이 많아졌다고. 엄마가 말이 없으면 아이가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은 말을 많이 하도록 진화되었다는 이야기다. 인류학적인 접근인데 그때 당시도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 수다스럽지 않은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는 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말인가. 

체질인류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가 발정기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남녀끼리 만날 수 있는 까닭은 아이가 크기 위해서는 남자의 보호가 필요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여성이 자신의 몸으로 쾌락을 제공했단다. 얼마큼이나 사견이 들어갔는지는 몰라도 그 양반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주장했는데 바로 이런 식의 주장이다. 

최근 들어 나는 여성이 말 많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도 나이가 들어 여성호르몬이 많아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의 언어는 곧 인정과 화해의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여성의 하소연을 듣다가 넉넉히 내용이 전해지는 것이라서 긍정적인 입장에서 말을 거들었다가 혼난 적이 있다. 왜 끝까지 들어주지 못하냐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추임새를 넣는답시고 공연히 예를 들은 것이 잘못이었다. 이보다 심한 것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가 감정을 거슬린 것이다. 나로서는 긍정의 표시였지만 다 듣지 않은 내 모습이 눈에 거슬렸던 것 같다. 

현대철학자 가운데 하나는 ‘잡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한다는 것이다. 하긴 잡담이 많은 집단일수록 화합이 잘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잘 통하지 않는 사람끼리 대화가 많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성은 주로 수직관계에 익숙하다. 따라서 말이 없다기보다는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판단을 하길 좋아한다. 쉽게 말해 조직이나 군대문화에 익숙하다. 그러나 여성은 주로 수평관계를 지향한다. 남의 말을 인정해주기 같은 것이다. 개인적인 고통이나 감성적인 느낌을 공유하기를 좋아한다. 

현대사회에서는 과연 어떤 어법이 환영을 받을까? 갑질하는 남성의 언어일까, 화해하는 여성의 언어일까? 말할 것도 없이 민주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소통과 납득의 언어는 여성적일 것이다. 

나도 여성적인 언어를 쓰고 싶지만 잘 안 된다. 남의 고통을 이해하기보다는 우리의 목표가 더 눈에 띈다. 개인의 괴로움보다 조직이 우선인 남성적 문화에 익숙하다. 반성한다. 남성은 명령하는 동물이고, 여성은 이해하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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