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낚는 그대에게
희망을 낚는 그대에게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5.01.14 1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새 삶을 다짐을 하고, 결기 있게 출발한다.

담배를 끊고, 운동을 하고, 일기를 쓰고, 일일일선(一日一善)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웃으며 살아야지 등 저마다 결 고운 다짐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대부분 작심삼일이 되어 도로 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그렇게 관행과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작심삼일이 되어버린 범부들은 자신의 행태를 합리화 하거나 자조하면서, 또 다시 세월을 먹는다. 

언제 부터인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고 ‘희망찬’ 이라는 긍정의 언어를 앵무새마냥 되뇌인다.

마치 조물주가 실의에 빠진 인간들에게 희망이란 선물을 주고자 새해라는 시간의 눈금을 준 것처럼, 새해의 문을 희망으로 연다.

희망의 사전적 의미는 앞날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람,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유의어로 원, 포부, 희원, 기대, 소망 등이 있다. 

불행에 우는 사람도, 불만투성인 사람도,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진 사람도, 쓰디쓴 실패와 배신의 잔을 마신 사람도,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모두 희망이라는 비빌 언덕을 갖고 있어 현실을 감내하며 산다.

이처럼 희망은 사람을 살리는 비타민이자 에너지원이다.

희망을 잃은 자는 죽은 자이고, 희망을 버린 자는 삶을 포기한 자이다. 

매몰된 캄캄한 막장에서도, 지진이 휩쓸고 간 폐허더미 속에서도, 거친 풍랑에 좌초된 선실 안에서도, 희망의 끈은 있다. 

암담한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기적처럼 소생하고, 연이은 실패와 처절한 패배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재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희망이라는 질긴 동아줄이다. 

그러므로 산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고 그 희망들이 모여 더 좋은 삶,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 

희망은 별빛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물고기를 낚듯 낚싯줄로 건저 올리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것이다. 

희망은 그렇게 생성되어 존재하나 무지개와 같아서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다. 희망도 어린아이 키처럼 날마다 자라고, 나이가 많다고 시들해지지 않는다.

어린 아이든, 청년이든, 노인이든 모두 또래의 희망이 있고, 처지와 상황에 따라 희망도 변하고 진화한다. 모든 인간은 조물주로부터 언제 어디서나 희망을 가질 특권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대도 희망을 낚을 권리와 자격이 있다.

이 세상 최고의 희망봉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다.

사람에게서 희망을 본다. 

불후의 명곡에서 전설을 뛰어넘는 후배들에게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듯이. 자식에게 희망을 보고, 후배들에게도 희망을 본다.

사랑도 희망을 먹고 자란다.

사랑한다면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야 한다. 희망이 없는, 희망이 되지 못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금년보다 내년이 좋으리라는 희망은 여전히 유효하다.그러므로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한줄기 희망의 빛을 안고 살아야 한다.

중병을 얻어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자들도, 가정이 파탄 나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들도, 의지처가 없는 외로운 사람들도, 한때 잘못으로 영어의 몸이 된 수인들도, 돈이 없어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도, 모두 희망을 잃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 권토중래하길 희원한다. 

오늘도 희망을 낚는 그대여! 

힘들고 고단한 삶이지만 그대로 인해 세상은 아직 살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 남은 생 나는 그대의 희망이 되고, 그대는 나의 희망이 되어 사는 거다.

그대여 희망을 마음껏 희망하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