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시간을 엿보다
웃음의 시간을 엿보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1.14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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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이재무
 
서산 마애석불 돌 속에 새겨진
저 웃음이야말로 꽃 아니고 무엇이랴
무늬도 색깔도 냄새도 없는 저 꽃은 그러나
잔물결인 양 온몸에 번지는 웃음 하나로
보는 사람 문득 적막 속에 가둬버린다
저 인화의 웃음 속에는 시간이 출렁거린다
보는 이 가슴에 활짝 천진을 꽃피우는
저 웃음이야말로 무소불위 힘 아니고 무엇이랴
태어나 천년을 지지 않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피어 있을 웃음의 잔주름
몸속에 스며 생활의 퍼런 독이 녹는다
저 꽃 낳은 이는 어쩌면
저도 어쩔 수 없는 설움을 살았을 것이다
저도 어쩔 수 없는 미움을 살았을 것이다
돌 속에 핀 꽃은 한동안 저를 다녀간
사람의 생 안으로 불쑥 얼굴 내밀고
활짝 웃기도 할 것이다
 
※ 한줄 한줄 시를 읽어가면서도 미소가 번집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백제의 미소 때문입니다. 돌에서 피는 웃음이라니. 천 년 전 이름 모를 석공의 손에서 다듬어진 미소는 시공을 초월해 전율로 다가옵니다. 들끓는 내 안의 욕망도 덜컥 내려놓게 하고 단숨에 무장해제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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