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갯마루의 눈
고갯마루의 눈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1.1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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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소한(小寒)이 지나고 나면 겨울도 거의 반환점을 돈 것으로 보아도 된다. 겨울 한복판에 여기저기 눈을 돌리면 보이는 것이 바로 눈이다. 들판을 하얗게 덮은 것도, 산등성이에 하얗게 굽이친 것도 모두 눈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눈은 비가 추워서 변한 것에 불과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비와 크게 다른 느낌으로 와 닿는다. 새하얀 빛깔 때문에 순결의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하고, 목화 솜 같은 질감 때문에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눈의 이미지는 천차만별이다. 송(宋)의 시인 양만리(楊萬里)에게 눈은 무엇이었을까?

고갯마루의 눈(嶺雪)

好山幸自綠嶄嶄(호산행자녹참참) : 좋은 산은 저절로 푸르고도 가파르고
須把輕雲護深嵐(수파경운호심람) : 가벼운 구름 가져다가 깊은 산 기운 지켜야 하네
天女似憐山骨瘦(천녀사련산골수) : 하늘의 선녀가 산등성이 앙상함을 가련히 여겨
爲縫霧縠作春衫(위봉무곡작춘삼) : 안개 비단 재봉하여 봄 적삼 만들어 입혔네.

좋은 산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그 기준은 다 다를 것이다. 시인은 푸르고 가파라야 좋은 산이라고 봤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행(僥倖)스럽고도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시인은 보았다. 그러나 푸르고 가파른 것은 골격일 뿐이다. 푸른 나무와 가파른 기세, 이것은 하늘이 준 것이다. 여기에 살을 붙여야 진정 좋은 산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때 우선 필요한 것이 구름이다. 

가볍게 하늘을 나는 구름을 데려다가 산 주변에 배치시켜야 한다. 아무리 나무가 울창하고, 산이 높은들 그 위로 떠다니는 구름 한 조각이 없다면 얼마나 밋밋하겠는가? 위로는 물론이고, 허리를 감싸고도는 구름이 있어야만 깊은맛이 나는 것이 산이다. 

그런데 이 구름은 저절로 찾아온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하늘에 떠다니는 것을 손에 한 움큼 움켜쥐어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좋은 산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한 단계가 남아 있는 것이다. 산등성이가 메말라 보이는 것은 좋은 산의 중대 결격 사유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누가 고쳐줄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는 없고, 오로지 하늘의 선녀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하늘의 선녀가 하늘에서 산을 내려다보다가 산등성이가 수척한 것을 보고는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늘을 떠다니는 안개를 비단 삼아서, 그것으로 봄 적삼을 만들어 입혔다. 이렇게 하여 비로소 좋은 산은 완성된다. 산등성이에 하얗게 쌓여 있는 눈을 하늘 선녀가 안개 비단을 꿰매어 만든 봄 적삼이라고 표현한 시인의 안목은 참으로 탁월하다. 

겨울에는 동네 뒷산이라도 어느 명산 못지 않은데, 이는 바로 눈 때문이다. 산등성이에 소복하게 쌓인 눈은 그 자체로 황홀한 꽃이다. 거꾸로 아무리 명산이라 하더라도, 겨울인데도 그 산등성이에 눈이 쌓여 있지 않다면, 그 산의 맛은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눈은 겨울 산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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