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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5.01.1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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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펜을 쥐고 자연스럽게 쓰던 2014년이 써 놓고 보면 영 어색해지는 2015년이 시작됐다. 열흘 남짓 지났는데 무엇이 새로운 날인지, 달라진 달력 두께만 빼면 다 그대로다. 여전히 초저녁부터 어둠이 깔리는 겨울이고, 볼에 닿는 바람에 콧물의 훌쩍임도, 움츠러드는 어깨도 다 그대로이다. 새해가 시작됐으니 새로운 다짐도 하고 계획도 세워보려 하지만, 여전히 찬바람에 움츠린 어깨만큼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지도 작아진다. 2015년은 무엇을 하고자 했을까? 

나는 새해가 되면 ‘올해에는 반드시 100권의 독서량을 채우자’고 다짐했다. 독서록도 열심히 쓸 것이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겠다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다부지게 맹세를 했다. 매년 반복되던 다짐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식상했다. 그렇게 새해 약속을 하지 않으면 목표치에 근접할 수 없다며 유난 떨던 내 모습은 없고, 어제와 같은 하루인 듯 일상을 보냈다. 그런 날들이 열흘이나 지나버린 것이다.

활자를 읽는 기쁨을 누리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요즘 똑같은 책을 계속 들고 다닌다. 읽음 표시가 진전이 없는 걸 보면 꽤나 재미가 없나 생각되지만, 한쪽 안경알에 그려진 눈과 흰색 표지에 청록색 글씨로 간결하게 쓰인 책 제목 ‘보다’를 보면 호기심에 책을 놓을 수도 없다.

‘보다’(김영하 저·문학동네·2014년)는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이다. 소설가로 유명한 그가 아주 오랜만에 출간한 산문이며, 이 산문을 내자마자 추후 ‘읽다’와 ‘말하다’를 출간하겠다고 발표해 그의 팬들을 흥분케 했다. 저자의 오래된 팬이자 독자인 나는 반가움에 예약구매를 누르고 손꼽아 책을 기다리다 받긴 했지만, 그의 산문은 영 어색했나 보다. 책을 받고 몇달이 지나서야 다 읽었으니 말이다. 

나는 저자의 소설을 참 좋아한다. 참신한 소재와 간결한 문장은 읽는 내내 긴장감을 준다. 소설 속 내용이 흔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서 좋아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아쉬웠던 것은 저자의 늘 세상 밖에 사는 사람 같은 논조였다. 이 책에서 저자가 밝힌 것처럼, 저자는 세상의 방관자이자 관찰자로서 작품을 쓰고 있어 저자의 책을 좋아하면서도 아쉬움을 남겼다.

‘보다’는 그런 저자의 세상 깊숙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의 작품으로 처음 읽는 독자는 편안하게 읽힐 수도 있는 평범한 문체이나, 오랜 팬인 나에게는 자못 어색하다. 그러면서도 반갑다. 저 멀리 다다를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있는 듯했던 저자가 옆집 오빠이자 아저씨 같다. 친근해진 만큼 책의 내용도 친근하다. 

저자의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한 책이다. 같은 세상을 보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해준 책이다. 그리고 우리가 겪어가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책이다. 수십억명 사는 지구, 5000만명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반도. 끊임없는 일이 벌어지고 잊혀진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타인을 바라본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깨달음을 준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이렇게 더디게 마지막 책장을 덮었나 보다. 저자가 새롭게 출간할 다음 책을 또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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