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25)-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25)-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
  •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5.01.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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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직지'의 내용을 갑오년 한 해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의 가치관으로 살펴보았더니 을미년 새해에는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 즉 베풀 때에 누리는 큰 기쁨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 한다.

그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는 ‘직지’ 하권 13장 덕산 선감 선사(德山宣鑑禪師)의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덕산 선감 선사께서 처음에 용담에 이르러서 묻되 “오랫동안 용담을 그리워했더니 용담사 절에 와서는 못도 또한 보이지 않으며 용도 또한 나타나지 아니하도다.” 용담 스님이 말하기를 “자네가 친히 용담에 도달했느니라.” 덕산 스님이 예배하고 물러갔다.

덕산 스님은 《금강경》을 불태운 분이란다. 이분이 용담사에 와서 용담 스님을 처음 친견할 때 그런 식으로 주고받았단다.

덕산 스님이 용담 스님을 만나기 전에 《금강경》을 짊어지고 가다가 떡을 파는 노파를 만나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노파가 하는 말이 “당신이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묻는 것이다. “《금강경》”이라고 답하니까 그 노파가 하는 말이 “내가 한 가지를 묻겠는데 그 말에 대답하면 점심을 그냥 드리겠습니다. 《금강경》독송을 많이 하는 모양인데 내가 《금강경》에 대해서 질문해도 좋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래서 노파가 묻기를 “《금강경》에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어디에 점심(點心)하려합니까?”

그 말에 덕산 스님이 답변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파가 점심을 줄 수 없다고 물리쳤다. 거기서 되게 봉변을 당하고 그 길로 용담 스님을 찾아온 것이다.

사실 처음 덕산 스님이 용담 스님을 찾아간 이유는 용담 스님이 “단번에 성불한다”고 하는 말을 함부로 하니까 ‘내가 저 마구니를 제도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찾아간 것이란다.

그런데 용담 스님을 만나기도 전에 그 노파한테 당해서 기가 꺾였다.

그래서 용담 스님을 만나서 묻는 것이 “용담을 오랫동안 그리워했는데 용담에 도착해 보니 용도 보이지 않고 못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처럼 과거의 마음과 현재의 마음 또한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에 점심(點心)해야 하는지. 이 화두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될 수도 있겠다.

이는 ‘자기 안의 부처를 깨달아라’ 그러면 수련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교리인 듯하다.

사람들은 흔히 남으로부터 무언가 받을 때의 기쁨은 알고 있어도 베풀 때에 누리는 더 큰 기쁨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즉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 칭찬의 말, 격려의 말로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고 친절한 마음을 베푸는 것 등은 비록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겠는가.

을미년 새해에는 특히 때와 장소에 알맞게 자리를 양보하는 친절한 마음으로 가진 것 없이도 줄 수 있는 삶의 실천이길. 그래서 청양의 새해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모든 이에게 행복으로 가득 쌓이길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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