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걸, 즐길 걸, 베풀 걸
참을 걸, 즐길 걸, 베풀 걸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5.01.07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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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사람을 일러 생각하는 갈대라 했던가? 

그 생각 속에는 만물의 영장에게만 존재하는 후회라는 되새김질이 있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진화하게 한다. 

인간들의 후회는 각양각색이지만 공통분모를 가진 3대 후회를 들라면 단연 ‘참을 걸, 즐길 걸, 베풀 걸’이다.

어떤 이는 땅을 치며 후회하고 어떤 이는 가슴을 치며 후회한다. 모두들 지나간 일과 상황에 대해 그때 그렇게 할 걸 하며 때늦은 후회를 하는 것이다.

‘젊을 때 열심히 공부할 걸, 더 열심히 일하고 보다 치열하게 살 걸’ 하는 후회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보편적인 후회이다.

학창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무서울 것 없던 젊은 시절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땅을 치고 후회해도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박제된 후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살다보면 ‘참을 일, 즐길 일, 베풀 일’은 수시로 온다. 

그러므로 한 때 ‘참을 걸, 즐길 걸, 베풀 걸’하는 깊은 후회는 인간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는 촉매역할을 한다.

초인과 범부의 차이가 바로 후회의 차이에 있다. 

초인은 참아야 할 때 의연하게 참고, 즐겨야할 때 유쾌하게 즐기며, 베풀어야 할 때 아낌없이 베풀고, 한 번 한 후회는 되풀이하지 않는데 있다. 

그러나 범부들은 참아야할 때 참지 못해 화를 부르고, 즐겨야할 때 남의 눈치를 보느라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며, 베풀어야할 때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끝내 베풀지 못하고 후회한다. 

그러고는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매번 똑같은 후회를 되풀이 한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후회의 능력을 준 것은 후회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거듭나게 함에 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듯 후회가 더 나은 삶의 빗장을 열어준다.

세상에 완벽하고 완전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구든 크고 작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며 산다.

세상에는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제 잘못을 모르는 자, 잘못을 하면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는 하나 또다시 잘못을 되풀이하는 자, 잘못을 알면 즉시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자가 있다.

‘참을 걸, 즐길 걸, 베풀 걸’은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이지만 과거지향형 유추성 후회라 단죄 받을 죄악은 아니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대부분 참지 못해 온다. 

이웃 간 사소한 말다툼에 칼부림도, 왕따 당한 병사가 동료에게 총기난사를 하는 비극도 모두 순간의 욱함을 참지 못해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참화다. 

참으면 살인도 면할 뿐 아니라 설사 자신은 아플지언정 남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의와 협잡을 보고 눈감으란 말은 아니다. 웬만한 일에 쉬 분노하거나 흥분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려면 참을 줄 아는 내공을 키워야 한다. 웬만한 일쯤이야 웃어넘기는 넓은 도량을 키워야 ‘참을 걸’이라는 후회를 하지 않게 된다. 그게 바로 인내의 미학이다.

행복은 즐기는데 있다. 그런데 즐기라고 멍석을 깔아주어도 즐기지 못하는 자들이 의외로 많다.

나이 들면 주된 후회가 그 때 ‘즐길 걸’이니 즐길 일이 있으면 마음껏 즐겨야 한다. 웃고 즐기다가 배꼽이 나와도 좋다. 놀 때 화끈하게 놀 줄 아는 사람들이 창의력도 높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안다. 그게 바로 즐김의 미학이다.

성공의 척도는 베풂에 있다. 

얼마나 높은 지위에 올랐느냐, 얼마나 많은 제물을 모았느냐가 성공의 잣대가 아니다. 살면서 얼마나 베풀고 살았느냐가 성공의 잣대이다.

누구든 많이 베푸는 자에게 고개를 숙인다. 주는 자도 받는 자도 행복해지는 게 베풂의 미학이다. 

그대는 지금 잘 참고, 잘 놀고, 잘 베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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