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향
어떤 고향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1.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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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사람으로 태어나 살다 보면, 자의로든 타의로든 고향을 떠나고 집을 나가서 살아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되어 있다. 여행이나 일로 인한 경우는 덜 하겠지만, 가난이나 화(禍)를 피해서, 또는 어떤 형태로든 불우(不遇)로 인해 그런 일을 당하면, 그 심정은 말할 수 없이 불안하고 외롭고 쓸쓸할 것이다.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에서 맞는 객지 생활은 순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마음 다스리기이다. 

어쩔 수 없이 살게 된 곳이지만, 그곳도 고향이려니 생각하며 정을 붙이고 살려면, 먼저 마음부터 다스려져야 한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정치적 불우(不遇)로 인해 여러 차례 폄적(貶謫)을 당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살아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구강(九江)의 여산(廬山)도 그러한 곳 중의 하나였다.

초당이 처음 지어져 동쪽 벽에 쓰다(草堂初成偶題東壁)

日高眠足猶慵起(일고면족유용기) : 해 높이 돋도록 잠자도 늦어 일어나고
小閣重衾不怕寒(소각중금불파한) : 초당의 두꺼운 이불로 추위를 몰랐다.
遺愛寺鐘欹枕聽(유애사종의침청) : 유애사 종소리, 베갯머리에서 듣고
香爐蜂雪撥簾看(향로봉설발렴간) : 향로봉 눈, 발 걷고 바라본다.
匡廬便是逃名地(광여편시도명지) : 광려 땅은 곧 숨어 살기 좋은 곳 
司馬仍爲送官(사마잉위송노관) : 사마의 벼슬이 내 노년 벼슬살이로다. 
心泰身寧是歸處(심태신녕시귀처) : 마음과 몸 편안하면 내 살 곳인데 
故鄕何獨在長安(고향하독재장안) : 고향이 어찌 번화한 장안에만 있어야 하는가.



폄적(貶謫)으로 난생처음 오게 된 여산(廬山)에서 시인이 처음 한 일은 바로 집짓기였다. 주변의 풀들을 엮어서 만든 초당(草堂)이지만, 시인에겐 더 이상 안온할 수가 없다. 낯선 곳에 그것도 폄적(貶謫)으로 온 터라, 그리고 풀로 얽은 허술한 집이라서 마음은 불안하고 생활은 불편할 법도 한데, 시인은 전혀 그런 내색이 없다. 

얼마나 마음이 편했으면, 해가 높이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도 일어나기가 싫었을까? 허술한 초당이지만, 추위도 걱정 없었다. 좁은 집이라 두꺼운 이불 하나면 따뜻하게 잠자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시인의 초당은 궁벽한 산골에 있었지만, 시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도리어 깊은 여산(廬山) 산 중에 있는 절인 유애사(遺愛寺)의 종소리를 베갯머리에서 들을 수 있고, 여산(廬山)의 절경인 향로봉(香爐峰)을 주렴만 걷으면 바로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대범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다. 광산(匡山)이라고도 불리는 여산(廬山)은 세속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깊은 산 속이라, 본디 은자(隱者)들이 숨어 사는 곳으로 잘 알려졌었지만, 시인에게는 말년의 부임지가 되었다. 

그만큼 궁벽한 산속에 오게 되었지만, 시인은 도리어 이곳이 고향처럼 느껴졌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마음 다스리기였다. 이를 통해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태평스러워지고, 몸이 편안해졌으니 말이다. 고향이 꼭 장안(長安)에만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님을 시인은 절감한 것이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다. 정 붙이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가난이나 불우(不遇)함으로 타향도 아주 험한 타향에 살게 되더라도 그곳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살다 보면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이 경우에도 유효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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