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언젠가는
  • 충청타임즈
  • 승인 2015.01.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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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새해가 오는 길목인데도 마음은 고요하다. 휴대폰 신호음과 함께 밀려들던 복사된 연하장도 조금 뜸해졌다. 올해는 유난히 설렘도 각오도 없다. 세월호를 비롯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남겨둔 채 새해를 맞는 마음이 오히려 아프고 부끄럽다. 그래도 문자로 전해오는 안부인사에는 짧은 글이지만 애정이 담겨 있다. 고마운 마음에 정성껏 답장을 하고 언제쯤 한 번 마주하고 차라도 할 수 있을까 목소리를 상상하며 일정을 살핀다.

새 다이어리를 여니 사진이 한 장 툭 떨어진다. 중년의 네 여자가 활짝 웃고 있다. 스카프 멋스럽게 날리는 모습 뒤로 장 익는 항아리들이 줄지어 서있다. 햇살 눈부신 풍경속에서 잊히던 기억과 함께 온기가 풀려나온다.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가며 마음이 따스해진다. 큰아이 어릴 적 친구 엄마들인데 바쁜 시간들을 어렵게 맞춰 나들이 갔다 찍은 사진이다. 송년 모임 날 오랜만에 받아보는 사진이 선물처럼 고마웠고, 더욱 소중한 인연처럼 여겨졌다. 꾸미지 않은 사진이라 더욱 각별한 느낌이 드는 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휴대폰을 비롯해 카메라 성능이 좋다보니 어딜 가나 누구에게나 사진 찍기는 일상이다. 온전하게 대상을 즐기고 감상하기도 전에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플래쉬 소리가 불편할 정도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풍경도 사람도 기술적으로 완벽한 편집을 거쳐 SNS에 올라온다. 아름답게 왜곡된 이미지로 쓰고 남은 사진들이나 바쁘다는 이유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사진들은 저장 용량만 늘리는 잊혀진 기록이 되고 만다. 내 휴대폰 역시 지우지도 못한 채 언젠가는 이라는 생각에 담아놓은 시간들이 무겁게 쌓여있다. 누군가의 휴대폰에 내 모습도 그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새삼 다이어리를 살피다 말고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불러내 한 장 한 장 정리를 시작한다. 무의미한 기억들은 지우고 고마운 인연들은 앨범 정리를 한다. 가족들과 다녀온 여행 기록들. 친구들. 풍경들. 좋은 글귀들. 날 것 그대로 담긴 사진을 들여다보며 가끔이지만 함께 만나 밥 먹고 얘기하고 소소하게 보낸 시간들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차 한 잔 하며 얼굴 마주 보고 웃는 수다의 길이만큼 따뜻해지고 가까워지는 사이가 사람관계인 것 같다. 민낯으로 만나도 좋은, 보정하지 않은 사진과 같은 인연들. 


카카오톡으로 날아온 연하장 중 

‘흐르는 날들이지만 /숫자에 따라 새로운 해 새로운 날 /삶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의 것’이라던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새해라는 의미가 있어 돌아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남겨둔 지난해의 숙제들이 슬그머니 저장함으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줄을 세운다. 그리고 ‘너무 늦기 전에 저장된 기억들을 사진으로 전해주고 안부를 나눠야지.’ 새해 꼭 해야 할 일들에 하나를 추가한다. ‘꽃 보다 더 아름다운 게 인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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