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 심억수 <시인·충북중앙도서관>
  • 승인 2014.12.3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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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충북중앙도서관>

2014년 12월 31일부로 공직을 떠난다. 군인으로 근무한 기간을 합하여 국가에 봉직한 기간이 33년이다. 그동안 시원섭섭함을 토로하며 퇴직하던 수많은 선배를 보면서도 남의 일이려니 생각하며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몰랐다. 막상 내가 퇴직을 하려니 시원섭섭함보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나의 삶의 한 획을 긋는 시간 앞에서 경건한 마음이 든다.

돌이켜 보면 명예롭게 33년 공직생활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곁에서 힘이 되어준 직장 선·후배들의 덕분이다. 힘들고 어려운 고비마다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며 함께 웃어준 그들이 없었다면 33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본청에 발령을 받아 박봉과 서투른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표를 내려고 하였다. 그때 나를 위로해 주고 용기를 준 나이는 어렸지만 속 깊고 배려할 줄 알며 늘 힘이 되어준 최00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그 후로 그는 나의 멘토가 되었다. 지금도 현직에서 후배들의 훌륭한 관리자로 존경받으며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 

업무처리를 하다 보니 내가 너무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야간 대학에 진학하였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대학생활을 열심히 노력한 결과 장학생으로 졸업하였다. 그리고 취미로 시와 수필을 틈틈이 배우고 익혀서 초등학교 때 꿈꾸었던 문학인이 되었다. 

학창시절 공부에 뜻이 없었던 나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모 대기업 식품사업부 영업사원으로 입사하였으나 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거나 만만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상대방의 영악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대리점의 부도와 함께 퇴사하였다. 

나의 첫 공직생활은 사무원으로 금천고등학교 행정실에서 시작하였다. 1년간 신설학교 개교업무와 학교행정의 기초를 다지는 데 이바지한 결과 충북교육청 기획감사담당관실에 특채되어 총무과, 중등교육과, 청원교육청, 중앙도서관, 충북학생문화원 등에서 순탄하게 공직의 길을 걸었다. 

충북교육청 총무과 근무 시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정으로 교육감표창과 연금업무 유공자로 선정되어 총무처장관 표창을 받았다. 또한 충북중앙도서관 총무과에 근무하면서 재산 및 복지후생업무를 담당하였고 쾌적한 도서관 만들기 사업의 목적으로 연중 꽃피는 정원조성과 급식소 식탁과 식판교체 및 조리실 환경을 개선하여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해외연수를 다녀오는 영광도 안았다. 

나의 멘토인 최00의 권유로 취미로 시작한 문학 활동이 나의 공직 생활에 윤활유 역할을 하였으며 나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직장에 소홀함이 없이 문학 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하여 청주문인협회, 중부문학회, 충북 시사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시집 ‘물 한 잔의 아침’과 수필집 ‘억수로 좋은 날’, ‘여물지 않은 곡식은 버려진다’를 출간하였다. 나에게 문학은 지나온 나의 삶의 고백이며 앞으로 살아갈 나의 삶의 독백이다.

33년 공직 생활 많은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힘이 되어준 아내와 가족은 나를 무조건 믿어주고 격려해 주었기에 행복했다. 내 인생의 멘토를 비롯한 부부모임 여덟 가족이 쌍곡 휴양소에서 베풀어 준 축하와 위로의 1박 2일은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나의 마지막 공직생활에 격려와 배려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 부부모임 여덟 가족과 중앙도서관 선·후배 동료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제 나는 새로운 길 앞에 섰다. 다시 몸과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혜안의 눈으로 세상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더 깊이 있고 완숙하고 아름다운 삶의 막다른 길을 이제 다시 걸어갈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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