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안녕하지 못했던 2014년과 안녕하며
밤새 안녕하지 못했던 2014년과 안녕하며
  • 김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 승인 2014.12.2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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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큰 병원에 열흘쯤 입원해 본 사람들은 안다. 

밤새 안녕한지의 의미를. 밤새 안녕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지를. 필자도 세모에 황당한 교통사고를 당해 한동안 병원신세를 진적이 있다. 병실 유리창으로 보이는 바깥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힘들어도 부대끼고 사는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감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지붕위에 쌓인 잔설도,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도, 골목어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옹기종기 자리한 도시의 빌딩들도 모두 다 정겹고 아름답다. 밤이면 아파트 창가로 비추이는 불빛이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자동차들의 불빛물결과, 거리의 가로등과 네온사인 불빛, 취객들의 혀 꼬부라진 소리조차 아름답고 정겹다. 

이처럼 살아있는 움직임은 모두 아름답다. 더욱이 살려고,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며 극기하는 몸짓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환자들은 그런 극기를 통하여 대부분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병실에서 안타까운 최후를 맞는다. 갑자기 병동에 엄마 아빠 부르는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면, 어느 병실의 환자가 귀천했다는 신호여서 병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암울해 진다. 

그야말로 밤새 안녕하십니까? 이다. 시신이 영안실로 이동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로운 환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남은 환자들과 병원 스텝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바깥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지나고 보니 2014년 청마의 해는 일 년 내내 수많은 사건 사고로 얼룩진 밤새 안녕하지 못했던 한 해였다. 1~2월에는 교도소 유치인에게 일당 5억 원의 황제노역을 시켜 서민들이 분노했는데,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송파구 세 모녀가 집세와 수도·전기료를 남겨놓고 동반자살해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4월에는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해 온 땅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무고한 생명들이 수장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도 배에 갇힌 생명들을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부실과 무능 앞에 국민들은 치를 떨었고, 상주처럼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6~7월에는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고,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과 같은 병영 내 가혹행위와, 부대 내 성희롱·성추행 사건 등이 봇물처럼 터졌다.

어디 그뿐인가? 잘 달리던 지하철이 어두운 터널에서 갑자기 멈춰서고, 멀쩡한 도로 한구석이 푹 꺼져서 차량이 전복되는 등 도처에서 인명이 살상당하는 재난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또 연말에는 문고리 권력이니 십상시이니 하는 신조어들을 언론에 회자시켰던 정권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 문건유출 사태로 청와대의 국정 추동력이 떨어졌고,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이 터져 재벌들의 오만함과 재벌 비호세력들의 후안무취에 온 국민이 자괴감에 빠졌다. 

2014년은 그렇게 황제노역으로 시작해 땅콩회항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밤새 안녕하지 못했던 참으로 고통스러운 한 해였다. 

참담한 고통 속에서도 아픔만큼 성숙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2014년 청마의 해에 안녕을 고한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2015년 을미년 양띠 해가 밝는다.

새해에는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땅에 뿌리고 간 화해와 용서, 사랑과 평화의 씨앗이 축복처럼 돋아나기를 소망한다. 

국민 모두가 양처럼 선한 눈망울로 세상을 바라보고, 양털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푸른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양떼들처럼,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각 자의 삶터에서 참 평화를 구가하는 복된 을미년이 되기를 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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