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폄하하는 가석방 논리
국민 폄하하는 가석방 논리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4.12.28 2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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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대기업 오너들의 가석방 논란이 세밑의 화두가 되고있다. 장관들이 군불을 때고 여당에서 화답을 하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모양새다. 현행법 상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복역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사면과 달리 가석방은 법무장관의 고유 권한이다. 여권이 염두에 두고있는 옥중 재벌들은 일단 이 기준을 넘어섰다. 따라서 법무장관이 소신껏 권한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법무장관은 운만 떼고 경제부총리와 여당 대표가 나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재벌과 친하지못한 여론을 의식해서다. 

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대한항공 ‘땅콩 회항’사태다. 기업은 물론 종사자들까지 사유물로 간주하는 재벌 일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재벌 가석방은 물건너 가고 여론 떠보기도 중단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상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재벌을 구하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야당 중진까지 가세하며 실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모질고 각박한 세상에서 대상이 누구든 관용과 배려를 베풀자는데 쌍지팡이를 들고싶지는 않다. 그러나 정·관이 재벌 살리기를 위해 동원한 이런저런 수사들을 보면 ‘아직도 국민을 이런 수준으로 보는갗 하는 한심스러운 생각과 함께 한편으론 그 절박한 모습에 안쓰러운 생각까지 든다.

그들은 재벌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가석방 요건이 됐는데도 대기업 회장이라는 이유로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가석방과 관련해 법과 실제 집행 사이의 간극은 크다. 법은 형기 3분의 1 복역을 조건으로 달지만 대부분 가석방은 형기 80~ 90%를 채운 수형인들에게, 그것도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서 집행된다. 정·관이 공을 들이는 3명은 형기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이들을 당장 가석방하면 나머지 수만 수형인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셈이 된다. 

이들의 가석방이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 그렇더라도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감옥에 갇힌 재벌 몇명을 풀어놔야 불을 지필 수 있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실이라면 국민에게 사실을 이실직고부터 해야한다. 옥중 재벌과 흥정할 것이 아니라 국민과 고통을 공유하며 죄지은 재벌을 잡아넣을 때마다 어려워 질 우리 경제의 희한한 체질을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것이 먼저다. 

보도에 따르면 캄보디아 감옥에 우리 국민 18명이 갇혀 수개월째 재판을 받고있다고 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전화 사기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됐는데 대학생도 여럿 포함됐다고 한다. 

대부분 어려운 가정 출신들이라 변호사 도움도 받지못하고 재판에 임하는 모양이다. 고금리로 빌린 돈을 연체하는 대학생이 2만5000명을 넘어선 현실에서 캄보디아까지 가서 불법행위에 가담한 그들의 사정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현지 대사관과 외교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대사관은 변호인 지원은 영사 조력 범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외교부는 “그 나라 법에 따라 결정된 형을 마치게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고 밝혔다.

누구든 죄지은 만큼 처벌을 받아야 하고, 다른 나라의 법치도 존중해야 한다는 외교부 원칙대로라면 지금 추진되는 재벌가 가석방은 변칙일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 국가가 대우를 달리하는 여러 등급의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미사여구로 사실을 호도할 것이 아니라 재벌에 특혜를 주고 최대한 투자를 얻어내자고 국민을 설득하는 편이 낫다. 더한 경우를 숱하게 봐온 국민들에게 감옥의 재벌 몇명 풀어주는 일이 대수일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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